지난주 초 북한이 “수소탄 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하면서 새해도 불길한 폭발음으로 시작했다. 북한 지도자 김정은의 신년사는 화해의 내용을 담고 있었고, 핵 야심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남한은 2016년에 남북관계가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며 환영했다.
하지만 북한 국영매체가 수소폭탄 실험 ‘성공’으로 미국 위협을 방어할 주권을 확보하게 됐다고 밝히면서 낙관론은 곧바로 깨졌다.
한국전쟁(1950~1953)이 미국에서 ‘잊혀진 전쟁’이라고도 불리듯, 안타깝게도 역사는 종종 간과될 때가 많다. 그럼에도 역사는 결코 과거 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발표는 시기가 시사하는 바가 많다.
정확히 63년 전인 1953년 1월7일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미국이 수소폭탄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그 두 달 전인 1952년 11월1일 미국이 첫번째 실험에 성공하면서 세계 최초의 수소폭탄 보유국이 됐다. 기존 원자탄보다 무려 1000배나 위력적인 새로운 무기가 개발되면서 세계 핵무기 경쟁도 고조됐다. 이 모든 일은 한국전쟁 와중에 일어났다. 더글러스 맥아더 미·유엔 연합군 총사령관은 한국에서 핵무기 사용을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소련의 공중 지원이 미미한 상황에서 미 공군은 막강한 공군력을 바탕으로 북한 영토의 상당 부분을 파괴했다. 당시 전쟁을 보도한 기자들은 북한이 너무 심하게 파괴돼 마치 달 표면을 걷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기록했다. 3년간의 전쟁기간 계속된 폭격을 견디기 위해 군사 벙커는 물론 학교, 공장, 병원, 집까지 모두 지하에 건설됐다. 이 기간에 북에 사는 민간인의 약 10%가 살상된 것으로 추산된다. 마침내 휴전협정으로 전투가 멈췄고, 90일 안에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한편 한반도에 새로운 무기 도입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발표됐다. 하지만 평화협정은 성사되지 않았고, 미국은 오히려 1958년 남한 기지에 전술핵을 배치했다가 1991년 구소련 붕괴 이후에야 철수했다. 북한이 내내 핵 없는 한반도를 주장했음에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북한김정은'수소폭탄실험'관계자들과기념사진_연합뉴스
아이러니하게도 세계 냉전이 막을 내리면서 한국 냉전은 더욱 격렬해졌다. 소련 핵우산이 사라진 상황에서 북한은 자체적인 핵개발에 착수했고, 1993년 첫번째 북핵 위기가 일어났다. 하지만 기회도 함께 찾아왔다. 1994년 북·미 간 제네바 합의에 따라 관계 정상화를 목표로 구호를 제공하고 제재를 해제하는 대신 북한 핵개발이 중단됐다. 21세기에는 한반도 평화의 시대가 열릴 것처럼 보였다.
2000년에는 1945년 분단 이래 처음으로 남북한 지도자들이 정상회담을 열었다. 당시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은 미국 정부 관리 중 최고위직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올브라이트는 빌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는데, 만약 성사됐다면 관계 정상화의 첫 단추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2002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신년 국정연설에서 북한을 ‘악의 축’ 가운데 하나로 지목하면서, 북핵을 중단시킨 제네바 합의도 폐기됐다. 아니나 다를까 북한은 즉시 핵 개발을 재개했고 2006년 첫 핵실험을 실시했다. 이후 북핵 문제는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한 채 흘러왔다.
2016년이 암울하게 시작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역사를 이해한다면, 이제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야 할 때다. 지금 난관에 한국전쟁과 냉전이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이해하고, 온전한 관계 정상화를 가로막는 역사적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 실질적인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그럴 때에만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평화협정으로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하는 합의가 타결될 수 있다.
※이 기고는 1월8일 미국 독립매체 ‘트루스아웃(Truthout)’에 실렸습니다. 필자와 트루스아웃 허락을 얻어 게재합니다.
수지 김 | 미국 럿거스대 교수 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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