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창칼럼]정치지도자의 명예
본문 바로가기
경향 국제칼럼

[김우창칼럼]정치지도자의 명예

by 경향글로벌칼럼 2012. 1. 16.
김우창 이화여대 석좌교수


독일의 정계와 매체에서 두어 달 연속해서 크게 보도되고 있는 기사 하나는 크리스찬 불프 대통령의 어떤 행적에 관한 것들이다. 우리에게 관계가 되는 일도 아니고 또 앞으로의 귀추를 보고 판단해야 할 일이기도 하지만, 지금까지의 보도들만 보아도 불프 독일 대통령의 일은 정치와 도덕 윤리의 착잡한 관계에 대하여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맨 먼저 문제가 된 것은 니더작센주 주지사로 재직하는 동안 그가 부자 우인들로부터 돈을 빌려 주택을 구입한 일이다. 빌린 돈 50만유로가 문제시 되는 것은 돈을 빌린 일 자체보다도 주의회에서의 그의 답이 완전히 정직하지는 못하였다는 이유 때문이다. 질문은 주지사에게 혹 특정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기업가가 있다고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지난 십년 동안에는 그런 관계가 없었다는 것이 답이었다. 그런 답이 가능했던 것은 돈이 기업가에게서 빌린 것이 아니라 그의 부인으로부터 빌린 것으로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부부가 소유한 재산을 쉽게 구분할 수 없다고 한다면, 부인으로부터 돈을 빌린 것은 기업가와 어떤 관계를 가진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이 관계를 부정한 것은 잘못일 수 있다. (채권자 에디트 게에르킨스의 남편 에곤 게에르킨스는, 자신이 니더작센에서 토건업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거주지도 스위스이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있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나중에 불프 대통령은 빌린 돈을 계약 만기 전에 은행에서 빌린 돈으로 갚았다. 그런데 이 은행에서 빌린 돈의 이자율이 통상 이자보다 1% 정도가 낮았던 것이 다시 의혹의 대상이 된다.

니더작센의 차용금 건은 그대로 넘어 간 것으로 보였는데, 지난 12월에 그때의 답변이 연방의회에서 문제가 되었다. 이때 불프 대통령은 “그때의 답변이 법적으로는 맞는 것이나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었다”고 변명하였다. 니더작센 주의회에서는 이 일과 관련하여 법적인 문제가 있는가를 조사하였지만, 분명하게 법률적인 문제가 있다는 답을 내놓지 아니하였다.

이러한 사건들과 관련하여 또 다른 일들이 문제가 되었다. 하나는 그가 플로리다 그리고 마요르카에 있는 독일 기업가들의 별장에서 휴가를 보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불프의 저서 <진실을 말하는 것이 좋다>는 책이 출판되었을 때, 광고비 4만유로를 어떤 금융업자가 부담하였다는 것이다. 또 하나 크게 문제가 된 것은 차용금 관계가 ‘빌트’지에 보도되기 직전, 중동을 방문하고 있던 불프 대통령이 그 소식을 듣고 ‘빌트’지 편집담당자에게 전화하여 그 보도를 중단 또는 연기하게 하려 했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은 언론 자유에 대한 중요한 침해로 간주될 수 있는 일이어서 비판의 표적이 되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 두번째)가 크리스티안 불프 대통령 당선자(왼쪽 세번째)와 함께 30일 베를린 의회 의사당에서 이날 실시된 대통령 선거 결과 발표 뒤 축하 꽃다발을 받고 있다.(AFP연합뉴스)

 

다시 말하건대, 공직자로서 이해관계가 개입될 수 있는 사람으로부터 돈을 빌린 것, 오해의 근거를 은밀하게 바로잡기 위하여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린 것, 그 이자가 통상보다 낮은 것, 보도를 막으려 한 것--이러한 사항들이 논란이 된 것이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금전 거래의 적법 여부보다 여기에 따르는 도덕적 문제가 많은 사람에게 더 중요한 것으로 생각된다는 사실이다.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은 사실 문제에 있어서의 정당성이고 (부패한 사회에서는 그 사실 내용이 작고 하찮은 일로 보일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사실을 정시하고 말할 수 있는 개인적 정직성이다. 주택자금 대부 건은 대통령 자신, 위에 본 바와 같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지만, 도의적으로 반드시 옳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언론보도에 대한 설명은, 대통령의 전화는 보도를 막으려는 것이 아니라 해외에 체재하고 있는 만큼 귀국 시까지 보도를 보류할 것으로 요청하였다는 것이다.

독일 국민에게 중요하게 생각되는 정직성은 사실 단순한 정직성 이상의 높은 행동기준에 대한 요구로 보인다. 이번 일에 대한 우회적인 논평 하나의 제목은 “진실과 명예 사이”였다. 이 사건에서 요구되는 정직성은 정치인이 지켜야 하는 명예에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이 명예란 우리가 흔히 이해하는 바 밖으로부터 주어지는 관직이나 훈장이라기보다는 떳떳하게 행동하고 드높은 이상에 따라서 사는 사람의, 도덕적 자존심을 말한다.

여기에서 약간 샛길로 들어가 말한다면, 정치적 명예는 막스 베버가 정치인의 자격요건으로서 말한 “기사(騎士)적인 기개”로 다시 옮겨서 생각할 수 있다. 베버는 정치와 사회에 엄격한 의미에서의 도덕적 기준만이 적용될 수 없다는 사실을 크게 강조한 대표적인 현실주의의 이론가이다. 그는 정치가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사실에의 충실성이고, 자기가 인지한 객관적 사실에 따라서 책임과 정열을 가지고 일을 추진하는 힘이 정치지도자의 척도가 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도 특이한 것은 정치지도자에게 기사적 성품이 필요하다고 한 것이다. 이것은 베버의 개인적인 선호에 스며들어 있던 보수성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지만, 그가 강조한 정치에서의 책임윤리의 심리적인 자원과 인품 상의 자질을 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사가 가질 수 있는 명예 감각은 계급적 함의를 가지면서도 많은 독일인에게 보편적인 의미를 갖는 가치로 보인다. 그러한 명예의 이념이 없다고 하더라도 정치 지도자가 단순한 권력자가 아니라 높은 인격적 모범을 보여주는 인물이기를 바라는 것은 사람들의 심리에 깊이 스며있는 기대일 것이다. 이번의 일에 대한 여러 반응들을 보건대, 독일에서 이러한 도덕적 모범은 정치의 토대로서 특히 강하게 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연립내각에 참여하고 있는 자유민주당의 부대표 차슈트로프는 불프 대통령이 “우리가 대통령직에 있는 사람에게서 기대하는 위대함”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야당의 반응도 비슷하다. 클라우디아 로트 녹색당 대표는 “우리와 같은 민주주의에는 강한 도덕적 권위가 존재해야 한다”고 하면서 이 권위는 연방대통령에 의하여 대표되어야 하고 또 역대 연방대통령들이 대표하여 왔던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민주당 대표 지그마르 가브리엘은, 문제의 해명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직책을 “바르게, 믿을 수 있게” 수행하는 데에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회민주당 연방의회 원내 대표 슈타인마이어 의원은 인터뷰에서 “도덕적 성실성”을 가지고서 수행될 때에만, “신뢰할 수 있”는 공직이 대통령의 직책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신문의 독자가 표현한 것들도 대통령 그리고 정치인들의 모습에서 도덕적 귀감을 찾을 수 있기를 원하는 것이었다. 한 독자는 정치적 소신이 달라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했고, 다른 독자는 이번 일이 정치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또 한 번 손상했는데, 대통령은 국민이 그 정직성을 믿을 수 있는 국민의 대표라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 관저 앞에서 벌어졌던 시위대가 내건 플래카드에는 “그는 거짓말을 했다”라는 것이 있었다. 좌파당의 네스코비치 연방의원의 말은 이러한 도덕의 핵심을 가장 날카롭게 지적한 것이다. “불프 대통령은 진실에 대하여 윤리적 관계가 아니라 계산적인 관계를 가진, 직책의 소임에 맞지 않는 대통령이라는 인상을 준다”고 그는 말했다. (불프 대통령이 주변 인사에게 “이러한 일은 일년이면 잊혀질 사건”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는 바로 진실을 그 자체로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 계산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태도를 드러낸다고 할 것이다.) 

지금 펼쳐지고 있는 불프 대통령 관련 사건은 우리에게는 너무나 다른 정치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돈봉투 거래, 정경유착, 특혜, 거짓 해명, 윤리도덕의 정치적 전략화--이러한 것들이 일상화된 우리 정치의 특징이다. 여기에서 도덕적 명예가 중요한 정치 요인이 될 수 없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에게 정치는 철저하게 현실 전략이다.
그러나 역사의 긴 시간을 두고 볼 때, 도덕적 위엄을 갖추지 않은 지도자가 강한 지도자가 될 수 없고, 도덕적 신뢰를 가질 수 있게 하지 못하는 정부가 안정된 정부가 될 수는 없다. 독일에서 일고 있는 정치 문제는 이러한 잊혀진 정치 원리를 새삼 생각하게 한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