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이 정부가 한국은행의 팔을 비틀어 돈을 찍어낼 요량인가? 한은에 대한 정부의 집요한 고강도 압박에 한은이 무릎을 꿇을 것 같은 불길한 조짐이 보이기에 하는 말이다. 이전 칼럼에서 필자는 미국의 양적완화가 경기부양은커녕 되레 소득불평등의 심화를 가져온 주범 중 하나임을 지적하며 한국형 양적완화에 반대했다. 오늘은 망해가는 기업에 공적자금 투입과 양적완화로 실탄을 제공해서는 안되는 이유를, 미국의 예를 들어 반대 입장을 선명히 하고자 한다.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가 발발하자 막대한 구제금융 및 양적완화를 통해 공적자금을 월가 대기업에 퍼부었다. 그런데 이것이 모두 ‘도덕적 해이’의 결과물이자 원인이 된다. 금융위기는 월가 대기업들이 고위험과 고수익을 좇아 위험한 질주를 했기에 벌어졌다. 그런 짓을 한 이유는 그러는 동안 탐욕의 열매를 게걸스럽게 취할 수 있고, 그 질주의 끝은 결국 망하는 것인데 그 지경에 이르러 ‘배 째라’ 하고 나오면 정부가 나서서 이른바 ‘대마불사’라며 자신들을 구조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의 구조 손길은 바로 국민들의 혈세다. 그러나 미국 정부와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이런 일을 비밀리에 국민의 동의 없이 자행했다. 구제금융 시행 후 2년 만에 마지못해 연준이 밝힌 액수는 7000억달러다(이는 전 세계인들에게 100달러씩 돌아갈 엄청난 돈이다). 그러나 이것도 나중에 거짓으로 밝혀져 거의 두 배에 달하는 1조2000억달러가 투입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모두 국회, 언론, 국민들에겐 ‘깜깜이’로 진행된 불법 조치다. 물론 여기에 덧붙여 3차에 걸친 양적완화도 시행됐다. 애플이라는 일개 기업보다 연방정부가 보유한 현금자산이 더 적은 상황에서 구제금융이나 양적완화나 없는 돈 찍어내기는 도긴개긴이다. 모두 향후에 국민이 갚아야 할 빚이다.
그러나 이것은 골드만삭스 정부로 불릴 정도로 월가맨들이 장악한 미국 정부 고위관료와 월가 은행들이 상호출자해 만든 중앙은행인 연준의 짬짜미 결과였다. 그래서 미국 정부와 연준이 국민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대마불사라며 막대한 자금 확충을 꾀할 때 국민은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심장이 멎어가는 월가 은행에 인공호흡기를 달아 살려냈더니 고작 한 일이란 게 최고경영자를 비롯한 직원들의 막대한 보너스 잔치였다. 그리고 금융위기 이후에도 월가의 탐욕은 멈춤이 없고 도덕적 해이는 더욱 극성이다.
그러한 행태가 지금 똑같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려는가?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 경제상황을 한 치도 내다보지 못하는 무능한 경영진 때문에 대기업들이 망조가 들었다. 게다가 망조가 수면 위로 드러나기 직전 자신의 주식까지 몽땅 팔아넘기고 먹튀를 한 경영진의 파렴치한 행각의 책임은 묻지 않고, 지금까지 들어간 공적자금도 모자라 돈을 찍어내 밑빠진 독에 물붓기를 하려 드는가?
만일 자식이 귀하다고 감옥에 들어갈 짓을 했는데도 갖은 수단을 동원해서 부모가 빼낸다면 그 자식은 영원히 제대로 된 사람구실을 하기 힘들 것이다. 마찬가지로 망하게 될 기업은 그냥 내버려두라. 갖은 꼼수로 한은을 통해 돈 찍어 낼 생각일랑 하지 말라. 정부가 현재 염두에 둔 ‘코코본드’는 어디로 봐도 분식회계다. 어찌 부채를 자본으로 둔갑시키려 드는가? 하늘을 한 손으로 가릴 수는 없는 법. 유일호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통령 말 한마디에 득달같이 골프 치러 가더니 박용만 두산 회장에게 한수 배운 모양이다. 두산인프라코어가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둔갑시킨 영구채 발행 꼼수를. 그러나 그것은 언젠가는 터질 시한폭탄과 같은 것이다. 그것으로 두산의 신입사원이 명퇴 기로에 섰듯, 꼼수로 국민 동의 없이 양적완화를 하면 모든 국민은 쪽박을 차게 될지도 모른다. 국민은 봉이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은 지금 충분히 힘들다.
김광기 | 경북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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