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더티 해리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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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여적]더티 해리 대통령

by 경향글로벌칼럼 2016. 5. 10.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1971년 상영된 <더티 해리>를 통해 할리우드의 명배우로 입지를 굳혔다. 범죄자들을 무자비하게 다뤄 영화 제목과 같은 별명이 붙은 해리 갤러한 형사 역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법망을 피하는 악당들을 권총으로 단죄하는 연기는 아직도 영화팬들의 뇌리에 남아 있다. 9일 열린 필리핀 대선에서 승리한 로드리고 두테르테 다바오시 시장(71)은 ‘필리핀의 더티 해리’로 불린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초법적인 범죄 소탕이다. 스스로 범죄 용의자 1700여명을 재판 없이 살해했다고 밝혔을 정도다. 검사 출신인 그는 1988년 시장에 당선돼 하원의원 시절을 빼고 22년 동안 시장을 지냈다. 다바오시를 ‘모살의 도시’에서 필리핀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로 탈바꿈시켰다. 두테르테는 대통령이 되면 6개월 안에 범죄를 뿌리 뽑겠다며 “범죄자 10만명을 죽여 물고기 밥이 되도록 마닐라만에 버리겠다”고 말했다. 필리핀에서 2014년 기준 하루 평균 살인사건이 30여건에 이르고 불법 유통되는 총기가 100만정에 이른다고 하니 유권자들의 선택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클린트 이스트우드_연합뉴스

두테르테는 ‘필리핀의 트럼프’로도 불린다. 1989년 다바오시 교도소에서 폭동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수감자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살해된 호주 여성 선교사를 두고 두테르테는 대선 과정에서 “그녀는 아름다웠고 시장인 내가 먼저 (강간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황의 필리핀 방문 때 길이 막혀 차에서 5시간 갇혀 있었다는 이유로 교황을 “매춘부의 자식”이라고까지 욕했다. 트럼프의 막말 제조술은 그에 비하면 하수인 듯싶다. 그의 막말을 덮어버린 것은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빈곤선 이하에서 생활하고 소수 엘리트 가문이 주도하는 정치 부패였다.

두테르테는 범죄, 마약, 부패와의 싸움에서 독재자가 될 것이라 호언한다. 그러나 1986년 피플 파워로 쟁취한 필리핀 민주주의를 소멸시켜선 안된다. <더티 해리>의 주인공이 그의 롤모델일 수는 없다. 냉혈한으로 보이는 그도 선거 후 부모의 묘지를 찾아 자신을 계속 인도해 달라며 눈물을 흘렸다고 하니 냉혹한 파시스트적 사고가 바뀔 수 있다고 기대를 걸어봐도 좋은 것일까.


오관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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