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방화벽과 통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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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특파원 칼럼

만리방화벽과 통제사회

by 경향글로벌칼럼 2021. 3. 10.

베이징에 온 지 한 달. 3주 격리를 마치고 ‘자유의 몸’이 된 지 열흘이 지났다. 모든 게 낯선 환경이지만 특히나 적응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인터넷 속도다. ‘빛의 속도’를 자랑하는 한국의 인터넷 환경과는 비교하기 어렵다. 며칠 속을 끓이다 무선공유기를 새것으로 바꾸고 나서야 그나마 조금은 안정적으로 인터넷을 쓸 수 있게 됐다. 그런데 문제는 속도가 아니었다.

 

중국에 왔음을 가장 실감케 한 건 말로만 듣던 ‘만리방화벽’의 위력이다. 해외 사이트 등을 차단하는 중국의 인터넷 감시·검열 시스템을 거대한 만리장성에 빗대 부르는 말이 만리방화벽이다. 가상사설망(VPN)을 통해 우회 접속하지 않으면 한국에서 쓰던 인터넷 사이트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은 무용지물이 된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같은 ‘서양 문물’은 들여다볼 수도 없다. VPN을 연결해도 넷플릭스 같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는 보던 콘텐츠가 목록에서 사라지거나 VPN을 감지해 시청이 중단되는 일이 잦다.

 

만리방화벽이 등장한 건 인터넷이 활성화되던 2000년대 초반이다. 인터넷을 통한 장벽 없는 소통은 강력한 통치체제를 유지하려는 공산당에 적지 않은 위협으로 느껴졌을 터다. 대표적 반체제 인사였던 류샤오보가 인터넷을 ‘신이 중국인들에게 준 선물’이라 표현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시간이 흐르며 인터넷에서 소통의 공간이 확장된 만큼 중국에서는 만리방화벽의 위력도 강해졌다.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같은 대형 행사가 열리는 시기에는 인터넷의 보안이 더 강화된다고 한다. 인터넷 사용자와 VPN을 통한 우회 접속이 많아지자 중국 정부는 2017년 ‘인터넷 안전법’을 통해 허가 없는 VPN 사용을 금지하기도 했다.

 

만리방화벽은 통제된 중국 사회를 상징하는 단면이다. 언론도 당과 정부에 의해 통제된다. 언론 통제는 여전히 중국에서 효과적인 체제 유지 수단으로 활용된다. 인터넷 시대에 방화벽에 갇혀 자란 지우링허우(九零後·1990년대생)와 링링허우(零零後·2000년대생)가 이전 세대보다 더 강한 민족주의적 성향을 보인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언론 통제를 통한 체제 선전의 결과물이다. 체제 유지를 위해 사이버 공간에서 언론과 여론을 통제하는 것은 비단 중국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니다. 비영리단체 액세스나우(Access Now)는 최근 발간한 ‘인터넷 셧다운 보고서’를 통해 지난 한 해 동안 전 세계 29개 나라에서 강제적인 인터넷 접속 차단이 이뤄졌다는 분석 결과를 내놨다. 올해 초에도 대선을 앞둔 우간다에서 인터넷이 먹통이 됐고, 쿠데타를 일으킨 미얀마 군부가 가장 먼저 한 일도 인터넷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권력은 유한하고 인터넷의 확장성은 무한하다. 언제까지 사이버 공간에서 국민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오산이다. 중국에서처럼 이미 많은 이들이 VPN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세계와 접속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방화벽 자체도 ‘눈 가리고 아웅’ 일 수 있다. 권력자들도 이를 모를 리 없다. 지난해 중국에서는 한 보안업체가 VPN을 통하지 않고도 해외 사이트에 접근할 수 있는 모바일용 웹브라우저를 일시적으로 선보인 일도 있었다. 베이징에서 조금은 더 자유롭게 세상과 접속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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