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정의 파리통신]모두를 위한 결혼, 방점은 ‘모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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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정의 파리통신]모두를 위한 결혼, 방점은 ‘모두’에

by 경향글로벌칼럼 2013. 1. 22.

목수정 | 작가·파리 거주 bastille@naver.com


올랑드의 31번째 대선공약, 동성애자 결혼 합법화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국회 상임위에서의 논의를 거쳐 오는 1월29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그러나 반대 세력의 주장대로 이 법이 “프랑스를 두 동강 내고” 있지는 않더라도, 상당한 긴장감이 맴돌고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난 13일의 반대 집회는 사상 최대 규모였다. 경찰 추산 34만명, 주최 측 추산 80만명. 경찰 추산에 근거한다 해도 한겨울에 모일 수 있는 집회 인원으로서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날 모인 사람들은 우파 정당 UMP와 FN 지지세력, 그리고 가톨릭 신도들. 동원된 테제베(TGV)만 5대, 대절된 버스 30대, 자원봉사 인력은 1만명이었고, 주최 측이 집회를 위해 들인 공식 비용만 15억원이었다. 뜻밖의 일격에 성공한 우파들의 놀라운 결집 뒤에는 가톨릭 교단이 자리잡고 있다.


리베라시옹은 신도들을 거리에 내보내는 가톨릭 교단이 이번 기회를 통해 전통주의에 근거한 새로운 십자군을 일으키려 한다고 비난 하였다. 이미 수십년 전부터 걷잡을 수 없는 쇠락의 길을 걸어왔던 가톨릭교회는 올랑드에 맞서려는 우파 정치세력을 규합해 전통적 가족주의에 대한 호소를 통해 새로운 세력 규합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가톨릭 교단은 성(性)과 출산에 관련된 모든 문제에서 히스테릭한 보수주의 입장을 취하며 모든 진보적 개혁에 끈질기게 반대해 왔다. 1967년 피임약 합법화, 1975년 낙태 합법화, 그리고 1999년 시민연대계약(Pacs)이 통과될 때 가톨릭 교단은 가족과 신의 섭리라는 이름으로 신도들을 동원해 정부와 국회를 압박했다. 특히 시민연대계약 때에는 “동성애자들은 화형대로”라는 섬뜩한 슬로건이 나붙었을 만큼 가톨릭의 반대는 극렬했다. 


오늘 ‘모두를 위한 결혼법’에 대한 가톨릭 교단의 태도는 이 같은 지난날의 연장선상에 있다. 바르바랭 추기경은 이 법이 허용된다면, 이것을 시작으로 근친상간, 일처다부 등에 대한 모든 금기가 허물어질 것이라는 자극적이고 선동적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럼에도 가톨릭신자 가운데 이 법을 찬성하는 사람의 수는 41%에 이른다. 


반면 동성애 커플의 입양할 권리에 대한 반대는 70%다. 가톨릭 교단은 동성애 커플이 입양을 할 경우 아동성추행 위험이 커질 것을 염려했다. 북미와 유럽에서 가톨릭이 쇠락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 것이 가톨릭 사제들의 상습적 아동성추행이라는 사실을 환기해 본다면, 그런 우려를 해줄 수 있는 자격은 그들에게 없지 싶다.



모두를 위한 결혼법 찬성 집회에서 “자유, 평등, 박애, 더도 말고, 덜도 말고”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행진하는 참가자들 (출처:경향DB)



2기 취임 선서를 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말했듯이, 동성애자들이 법에 의해 이성애자들과 똑같은 권리를 부여받지 못한다면, 민주주의는 여전히 심각한 절름발이 상태에 있는 것이다. 프랑스 교육부 장관 뱅상 페이용은 학생들을 동원하여 ‘모두를 위한 결혼법’ 반대를 위한 실력 행사를 하려 한 가톨릭계 학교장들에게 “동성애 청소년들의 자살률은 이성애 청소년들의 자살률보다 5배가 높다, 이 사실만 보아도 우리가 왜 동성애자들에 대한 차별을 철폐해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모두를 위한 결혼’에서 방점은 결혼이 아니라 ‘모두’에 찍혀있다. 이미 이성애자들도 점점 결혼이라는 방식의 결합을 벗어던지기 시작한 지금의 프랑스 사회에서 동성애자들은 또한 결혼 자체에 연연해 하지는 않는다. 단지 그들은 이성애자들과 같은 권리를 가지길 원할 뿐이다.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사이에 다르게 주어진 권리의 경계를 없애는 것이 ‘모두를 위한 결혼’법의 핵심이다. 이미 1789년에 선포되었던, 그러나 여전히 이르지 못한 평등의 세상에서 평등의 지평을 한 뼘 더 넓히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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