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트럼프 중동평화구상’ 논평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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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트럼프 중동평화구상’ 논평 유감

by 경향글로벌칼럼 2020. 2. 14.

지난달 2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발표한 ‘중동평화구상’은 트럼프 행정부가 오래 공들인 결과물이다. 트럼프 구상의 골자는 이스라엘이 1967년 전쟁으로 점령한 요르단강 서안 정착촌의 주권을 인정하고, 예루살렘을 온전히 이스라엘이 통제하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이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삼도록 하고 이를 받아들일 경우 10년간 500억달러를 지원한다는 내용도 있다. 그러나 이 구상은 불법을 힘으로 합법화하려는, 중동에 평화가 아닌 혼란과 충돌을 초래할 수 있는 위험하고 부당한 시도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해결에 대해서는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유지해온 원칙이 있다. 1960년대부터 무수히 만들어진 안보리결의, 유엔총회 결의는 이스라엘이 무력으로 확장한 영토가 불법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따라서 정착촌 합병은 국제법 위반이다. 또한 유엔은 예루살렘을 어느 국가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 도시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구상은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전부 통치하도록 했다. 동예루살렘을 떼어주겠다고 했지만, 그곳은 팔레스타인이 말하는 동예루살렘이 아니라 분리장벽 바깥의 변두리 땅이다.


트럼프는 이를 ‘현실적인 2국가 해법’이라고 했다. 2국가 해법은 원래 1967년 이전 국경을 기준으로 이·팔이 각각 국가를 건설해 공존한다는 뜻이다. 1993년 오슬로 협정을 통해 이 개념이 확립된 이후 2국가 해법은 중동분쟁 해결의 기본원칙으로서 국제적인 컨센서스를 형성하고 있다. 2국가 해법의 핵심은 정착촌 철수·동예루살렘 지위·팔레스타인 난민 귀환 등에 대해 양측이 합의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구상은 이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입장만을 반영했다. 트럼프의 ‘현실적 2국가 해법’은 국제사회가 원칙으로 삼고 있는 기존의 2국가 해법을 무너뜨리려는 시도다. 


사실 오슬로 협정은 20년이 넘도록 휴면상태다. 그 사이 정착촌 규모는 160여개, 인구 60만명으로 확대됐고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의 위협과 빈곤, 무능한 리더십으로 인해 극도로 피폐해진 상태다. 이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피로감도 쌓여 있다. 트럼프는 이런 여건을 활용해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팔레스타인을 압박하고 있다. 


일부 친미국가를 제외한 국제사회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은 유엔결의와 국제법, 1967년 이전의 국경선에 기초한 2국가 해법을 강조하며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유럽연합(EU)도 “미국의 구상은 국제적 합의를 벗어난 것”이라며 거부 성명을 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미국 등 국제사회의 노력을 평가하며, 이·팔 문제가 2국가 해법에 기초하여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기대한다”는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 명의의 논평을 냈다.


이 논평에 나오는 2국가 해법이 ‘트럼프식 2국가 해법’인지, 국제사회가 유지해온 원칙으로서 2국가 해법인지 얼핏 봐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김 대변인은 유엔 등 국제사회가 갖고 있는 원칙을 지지하는 입장이냐는 질문에 “그렇게 말씀드리지 않는다”며 선을 그음으로써 트럼프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임을 인정했다. 백악관이 트럼프 구상을 지지하는 각국 반응을 홈페이지에 소개하면서 한국 외교부의 논평을 자랑스럽게 포함시킨 것을 보면 미국 측의 요청이 있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정부는 2018년 5월 예루살렘의 지위와 관련해 “국제사회의 대다수 국가들이 지지하는 2국가 해법에 입각해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번 논평은 정부가 그동안 유지했던 중동문제 원칙에서 이탈한 것이어서 가벼이 볼 문제가 아니다. 물론 한국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사안에 대해 미국의 요청을 들어주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국가의 외교에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특히 한국처럼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나라라면 더욱 그렇다. 일관된 원칙을 갖고 있는 나라라는 인식이 국제사회에 널리 퍼져 있어야 외교적 자율권과 독자영역을 가질 수 있다.


우리에게 한반도 평화가 중요한 것처럼 팔레스타인에는 중동 평화가 중요하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기준이 어디서나 보편타당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것처럼 평화의 개념도 지역을 불문하고 같아야 한다. 인권변호사 출신의 대통령이 있고 진보의 가치를 추구한다는 문재인 정부에서 이런 입장이 나온 것은 유감이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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