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북핵 넘기와 한국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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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특파원 칼럼

미국의 북핵 넘기와 한국 역할

by 경향글로벌칼럼 2022. 2. 9.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출범 1년에 즈음해 대북 외교에 관한 저조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북한은 새해가 밝자마자 다양한 미사일들을 시험 발사하며 능력을 과시했다. 급기야 미국령 괌을 타격할 수 있는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까지 선보이며 ‘한반도 시계’가 2018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음을 시사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한 조정되고 실용적인 대북 접근법’은 출발부터 소극적인 정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바이든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식 ‘일괄타결’이나 버락 오바마 정부식 ‘전략적 인내’를 모두 지양하고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따라 실용적 조처를 제공하는 단계적 접근을 시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A정책과 B정책을 지양하고 중간을 추구한다는 식의 설명은 모호했고, 대화 제의에 응하지 않는 북한을 움직일 추가 동기 부여는 부족했다.

문재인 정부는 종전선언을 통해 장기 교착 상태에 빠진 비핵화 대화를 견인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가 먼저라는 북한의 요구와 비핵화 조치 없는 종전선언은 주한미군 철수 주장의 빌미가 될 뿐이라는 미국의 우려 사이의 간극을 메우지 못했다.

사실 전임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패배를 인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권을 인수한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 1년 동안 북한 문제에 얼마나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했는지도 미지수다. 바이든 대통령은 북핵을 ‘심각한 위협’으로 규정했지만 대응은 차분했다. 북·미관계는 긴장이 고조되거나 대화가 열리지도 않는 상태에서 흘러갔다.

새해 벽두 북한의 소나기식 미사일 시험 발사는 더 이상 ‘현상유지’에 머물 의사가 없다는 표현이었다. 핵·미사일 개발로 강력한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 입장에서 현상유지는 ‘고난의 행군’의 지속을 의미할 뿐이다. 북한은 이미 지난해 8차 당대회에서 극초음속 무기 도입, 1만5000㎞ 사정권 내 타격 명중률 제고, 수중과 지상 고체엔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핵잠수함과 수중발사 핵전략무기 보유, 초대형 핵탄두 생산 등을 국방력 발전 5대 과업으로 설정했다. 북한이 이 길을 따라 질주할수록 비핵화에서 멀어진다.

바이든 정부는 북한의 움직임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 소집을 요구하고, 한·미·일 외교장관 회의를 소집하는 등 발걸음이 바빠졌다. 하지만 지난 4일 북핵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열린 안보리 비공개회의가 미국과 중국의 입장차만 확인하고 끝난 것에서 보듯 북한의 명백한 안보리 결의 위반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를 모으기도 쉽지 않다.

북한이 대화 제의에 화답하기를 거부하고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이상 북한의 움직임을 제어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미국 내에서도 나온다. 북한에 더욱 강력한 매를 들어야 한다는 주장과 북한이 움직일 수 있을 만한 실질적인 유인책을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이 양극단에 있다. 어떤 방향으로 나갈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미국의 몫이겠지만, 한국 정부의 역할도 새롭게 주목을 받을 것이다. 차기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북핵위기 재발이냐 비핵화 프로세스 재가동이냐의 갈림길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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