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사랑의 트리’가 ‘분쟁·갈등의 트리’ 돼서야
본문 바로가기
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사설]‘사랑의 트리’가 ‘분쟁·갈등의 트리’ 돼서야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12. 3.

보수 성향의 기독교 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서부전선 최전방인 경기 김포시 애기봉 전망대에 성탄 트리를 다시 세워 불을 밝히기로 했다고 한다. 국방부는 그제 성탄절 전후로 애기봉에 임시 성탄 트리를 설치하고 점등 행사를 열겠다는 한기총의 요구를 받아들였다고 발표했다. 한기총은 오는 23일 신도 200여명이 모여 애기봉 트리 점등식을 연 뒤 2주간 불을 밝힐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기총의 애기봉 트리 점등이 북한을 자극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대단히 우려스럽다. 북한은 그동안 애기봉 성탄 트리 점등에 대해 “대북 심리 모략전”이라며 포격 위협까지 가하는 등 반발해 왔다. 이번에도 상당한 비난과 함께 군사적 위협을 가할 게 불 보듯 뻔하다. 그럼에도 국방부가 트리 점등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애기봉 점등은 2004년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합의로 중단됐다가 2010년 천안함·연평도 사건 이후 재개됐다. 그런데 지난 10월 해병대가 안전성 등을 이유로 노후된 등탑을 철거한 뒤 일부에서 대북 저자세 논란이 일었다. 이때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적절치 못한 조치였다며 군을 질책했다고 한다. 국방부가 남북 간 긴장 조성을 예상하면서도 강수를 둘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12년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가금리의 애기봉 등탑에 기독교시민단체들이 설치한 성탄절 조명이 점등되고 있다. (출처 : 경향DB)


한기총 역시 대통령의 진노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성명서를 발표하고 철거된 기존 등탑의 3배인 54m 높이의 전망대를 설치하겠다고 나섰다. 이번 성탄 트리 설치도 앞으로 이곳에 전망대를 설치하고 트리 점등 행사를 계속하겠다는 의미다. 애기봉 트리 점등은 기독교계 내에서도 찬반이 엇갈린다. 특히 지역 주민들은 북한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따라서 한기총이 등탑 점등을 강행하는 것은 순수한 종교활동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행동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이렇듯 트리 점등은 대북 전단 살포에 이어 또다시 불필요하게 남북 간 긴장만 조성할 공산이 크다. 한기총은 “성탄 트리가 남북한에 ‘복음의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탄생을 기뻐하는 성탄절에 주민을 불안에 떨게 하는 트리가 진정한 성탄 트리의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성탄 트리가 남북한 ‘분쟁과 갈등의 트리’가 돼서는 안된다. 기독교계에서도 북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다. 그렇지만 애기봉 성탄 트리는 답이 아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