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한국에 대한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조치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 규칙에 부합하며 자유무역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강변했다. 아베 총리는 2일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 “국가와 국가의 신뢰관계로 행해온 조치를 수정한 것”이라면서도 “WTO의 규칙에 정합적이다. 자유무역과 관계없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하기 어렵다. ‘신뢰관계’를 거론한 것은 이번 조치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조치 성격이라는 것을 시인한 것 아닌가. 정치적 이유에 따른 경제보복을 금지한 WTO 규칙을 명백히 위반해 놓고도 억지를 부리는 것이 볼썽사납다. 아베 총리만이 아니다. 니시무라 야스토시 관방부 부장관도 전날 기자회견에서 “한국과의 신뢰관계하에서 수출관리를 하기가 어려워졌다”면서도 이번 조치가 대항조치인지를 묻자 “적절한 수출관리 제도의 운용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며 말을 흐렸다.
일본이 안전보장 관련 제품의 수출에 관한 규정을 동원한 것도 어처구니가 없다. 한국을 안보상 우호국가인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해 ‘군사전용 우려가 있는 제품의 수출에 대해 허가를 받도록’ 한 것은, 한국을 안보 위험국가로 취급한 셈이다. 한국이 이 부품들을 수입해 일본을 위협하는 무기라도 만들 것이라고 여기는 건지 일본 정부의 설명이 필요하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 7월 3일 (출처:경향신문DB)
이번 조치가 얼마나 무리한 것인지는 일본 언론들의 반응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일본의 대표적 경제일간지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일 ‘전 징용공을 둘러싼 대항조치의 응수를 자제하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번 조치는 국제정치의 도구로서 통상정책을 이용하려는 발상이라는 의심이 짙다”며 “트럼프 정권과 중국이 사용하는 수법으로, 일본은 이런 수법에 선을 그어왔다”고 지적했다. 일본 언론조차 이번 조치의 치졸함을 비판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은 2010년 센카쿠열도 분쟁과 관련해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제한하자 불공정 무역보복이라며 WTO에 제소한 바 있다. 이번 조치가 당시 중국이 일본에 했던 것과 뭐가 다른가. 일본 내 반발 기류를 보면 이번 조치가 오히려 참의원 선거에서 마이너스가 될 공산도 있다. 아베 정부는 하루라도 빨리 보복조치를 철회하는 것이 내외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번 사태에 대해 국내 정치권도 초당적 대응에 나서야 할 것이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대표가 이번 사태와 관련해 “긴급 한·일 의회 교류를 추진하겠다”고 했는데, 자칫 ‘적전분열’이 되지 않도록 사려 깊게 대응할 것을 주문한다. 정부 대일외교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일은 우선순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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