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트럼프는 셀럽 아닌 ‘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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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정동칼럼]트럼프는 셀럽 아닌 ‘대통령’이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9. 7. 5.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직업 면에서 세 개의 모자를 쓰고 있다. 


첫 번째는 그의 본업인 부동산 사업자, 즉 비즈니스맨이다. 매우 현실적이어야 하고, 이득과 비용을 항상 계산해야 하며, 사업상 막힌 것이 있으면 뚫고 나가야 하는 직업이다. 현실적 ‘해결사’여야 한다. 


두 번째 모자는 우리 식으로 말하면 셀럽, 즉 셀러브리티(celebrity)이다. 사실 이 직업은 상당히 미국적인 연원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가 이해하는 스타나 유명인과는 매우 다른 성격의 직업이다. 미국의 셀럽은 꼭 연예인일 필요가 없다. 유명인 중 누구나 항상 화제를 뿌리고 다니면서 대중의 관심을 유발하면 셀럽이 된다. 그리고 대중과 언론은 그 셀럽의 일상을 쫓아다니면서 그 사람의 삶에 대한 정보를 만들어 팔고 소비한다. 요즘 한국의 아이돌 스타가 그런 면에서 셀럽에 해당된다. 정치인 중에서는 지금은 고인이 된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선구적인 셀럽이었다. 트럼프는 브랜드 사업을 하기 위해 자신이 셀럽이 되었는데, 리얼리티쇼 방송 출연을 통하여 그 직업을 더욱 확고히 하였다. 셀럽은 끊임없이 화제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예측하기 쉬운 사람이 되면 실패한다. 그리고 항상 대중의 관심을 모으는 속칭 ‘관종’이 되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30일 오후 판문점에서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악수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트럼프의 세 번째 모자이자 현업은 대통령, 즉 정치인이다. 트럼프가 현실 정치에 관심을 가진 것은 매우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그가 남긴 인터뷰 기록을 보면 젊었을 때부터 경제, 사회, 정치 이슈에 대해 상당히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즉 뚜렷한 정치 지향이 있었다는 얘기다. 이러한 정치 지향은 예측하기 어려운 셀럽과 다르게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매우 일관되고 뚜렷한 성향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그 직업이 대통령인 경우에는 자신이 내건 선거 공약에 그의 정치적 성향이 드러나 있으며, 그 공약을 이행하는 것이 그 직업을 잘 수행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그에 대한 인격적인 평가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위에서 말한 모든 직업에 다 충실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는 다 성공하였다. 그리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의 현업이 대통령이라는 것이고, 이 역시 충실히 하고 있다. 그의 공약에 대한 선호를 떠나, 그는 현재 공약 이행률에 있어서 역대 미국 대통령 중 매우 우수한 대통령으로 기록되고 있다. 지금의 그는 해결사형 정치인에 제일 가깝다. 셀럽은 대중의 관심을 끄는 소프트파워로 활용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서 셀럽 트럼프가 아닌 해결사적 대통령 트럼프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의 대통령이 중요한 안보 이슈인 북핵 문제를 셀럽과 같이 취급할 리 없다. 그는 해결을 줄곧 공약해 왔다. 


그런데 요즘 북한과 우리 정부가 트럼프 대통령을 셀럽으로만 주목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기고 있다. 북한과 우리 정부가 소위 정상 간의 톱다운 어프로치를 고수하는 이유가 셀럽 트럼프가 세기적인 이벤트를 위해 과거 대통령과는 달리 통 크게 정상 간에 딜을 할 것이라고 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이다. 아마도 2018년 6월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별로 준비도 안된 채로 매우 추상적이고 모호한 합의문을 덥석 받는 모습을 봤기 때문일 수 있다.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도 들어있지 않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문제적 용어도 사용하고 있는 문서에 서명을 하였고, 또 기자회견에서 단번에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중지시키고, 그 훈련을 도발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본인이 주인공이 되고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으면 무엇이든 가능한 사람이라는 강한 인상을 받았을 수도 있다. 그래서 2019년 2월 하노이 정상회담에 딱 한 장의 무리한 협상카드를 가지고 나온 북한, 하노이 회담에 대해 유난히 낙관적인 기대를 하고 있었던 우리 정부가 트럼프 대통령이 이벤트만 된다면 경제 제재도 쉽게 풀어줄 것이라고 셀럽 트럼프에만 너무 주목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하지만 만약 그런 계산을 했고, 또 아직까지 그런 전략을 가지고 있다면, 이는 큰 오산이다. 정치인 트럼프 대통령은 일관되게 시간은 급하지 않으며 비핵화의 최종단계에서 경제 제재 해제를 할 것이라고 말해왔기 때문이다. 


이번 판문점 번개 정상회담을 보면서 북한과 우리가 다시 셀럽 트럼프에 대한 믿음을 강화해 과도한 낙관론을 갖게 된다면, 하노이와 같이 또 한 번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깜짝 판문점 정상회담 후에도 시간은 급하지 않고 제재는 그대로 갈 것이라고 똑같은 해결책을 반복하였다. 


도널드 트럼프는 셀럽이 아니라 미국의 대통령이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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