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트럼프의 ‘스노글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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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세상읽기]트럼프의 ‘스노글로브’

by 경향글로벌칼럼 2018. 11. 13.

미국 중간선거 유세 풍경은 마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흔드는 ‘스노글로브’(snow globe)를 연상케 했다. 트럼프가 한바탕 휘저어 놓은 의료보험, 이민, 관세, 무역, 인종, 남녀차별 등 복합적이고도 민감한 이슈들은 금세 ‘트럼프 대 반트럼프’의 이분법적 구도로 전환됐다. 스노글로브 속의 눈가루가 모두 내려앉은 현재, 트럼프는 내년 1월부터 시작될 민주당 지배의 하원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가 됐다. 트럼프의 독주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2020년 재선을 도모하는 트럼프로서는 와신상담,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사실 지난 2년 동안 공화당 주도의 의회에서 이렇다 할 견제도 없이 무소불위로 군림해 온 트럼프의 통치는 정치적 내상을 입었고, 그 결과 그의 일방적 질주는 사실상 끝났다. 의회의 승인 없이 대통령 독단으로 실행할 수 있는 중요 국가정책들은 많지 않다. 주요 정책 관련한 입법과 예산 집행에 앞서 열리는 하원 청문회는 사사건건 트럼프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될 게 분명하다. 예를 들어 당장 내년 초부터 북한,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트럼프 일가 비즈니스 등과 관련이 있는 청문회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개최될 게 확실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전날인 1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파리 _ EPA연합뉴스

 

행정부 각 부처의 의회 대응전략을 놓고서 백악관의 현미경식 통제도 더욱 어렵게 됐다. 하원의 견제에 따른 트럼프의 권력 금단현상이 어떻게 진화할지 이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일촉즉발 워싱턴 정가가 정쟁(政爭)의 화약고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그 불똥이 언제, 어디로, 어떻게 튈지는 누구도 모른다. 북한도 다급해졌다. 북·미 고위급회담의 돌연 연기 배경에는 제재완화에 대한 이견도 있었겠지만 미국 의회권력의 이동을 주의 깊게 독해해야 하는 평양 수뇌부의 숨고르기와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만에 하나 김정은이 하원 권력을 넘겨준 트럼프를 오인식(misperception)하여 트럼프를 속일 경우 위기는 인화물질을 기다리는 기름이 될 것이다.

 

2003년 10월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한 북한은 15년이 지나도록 복귀는커녕 여섯 차례의 핵실험으로 핵보유국임을 국제사회에 성공적으로 각인시켰다. 통일부 장관도 북한이 핵무기를 20~60기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북한은 금년 4월 조선노동당 7기 3차 전원회의에서 채택한 결정서에서 “국가에 대한 핵위협이나 핵도발이 없는 한 핵무기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와 핵기술을 이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미국의 위협이 상존하는 한 최소한의 핵무기만 보유하겠다는 의지표명이자, 핵을 자발적으로 먼저 포기할 의사가 없음을 명백히 드러냈다. 한마디로 김정은의 핵전략은 ‘핵무기 미니멀리즘’이다.

 

북한은 핵무기 제조의 처음과 끝을 모두 섭렵한 핵무기 완성국이다. 다양한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 등으로 북한은 원하는 데이터를 확보했다. 추가 핵실험은 긴요하지 않다. 빵가게를 폐점하더라도 레시피만 갖고 있으면 언제라도 고유의 빵을 만들 수 있는 이치와 같다. 이런 까닭에 북한은 이미 공개된 핵 관련 시설들을 영구적으로 없애는 대신 이에 상응하는 대가를 미국에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은 할아버지 때부터 시작하여 어렵사리 이룬 핵무기와 관련 시설들을 제값에 교환하고 그 대가를 자신의 정권유지에 활용하겠다는 전략적 계산을 이미 끝냈다. 이악스럽기는 해도 비합리적이지는 않다.

 

트럼프마저 비핵화를 서두르지 않겠다고 공언한 마당에 비핵화는 불확실성의 장기전에 돌입했다. 북한 비핵화가 남북관계 발전에 이르는 유일한 통로가 아니기는 해도 문재인 정부가 출범부터 높이 치켜든 비핵화 깃발은 당분간 외롭게 펄럭이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북·미 간 신뢰 에너지 역시 눈에 띄게 방전됐다. 북한이 핵무기를 신고하고 완전히 제거한들 워싱턴 매파들의 의구심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게 분명하다. 마찬가지로 트럼프는 비핵화, 제재, 레짐 체인지, 인권 등이 들어있는 스노글로브를 세차게 흔들 것이다. 안보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하여 정부는 헤징(hedging)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이병철 |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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