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 대국관계는 과연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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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신형 대국관계는 과연 가능한가

by 경향글로벌칼럼 2013. 6. 13.

지난주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미국에 ‘신형 대국관계’를 제의했다. 미래의 세계 질서는 미·중 양국의 건전한 경쟁과 협력을 통해 조화롭게 형성돼가야 한다는 중국의 희망이 담겨 있다.


신형 대국관계라는 용어는 2010년부터 미·중 간 고위급 접촉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대충 짐작은 가지만 정확히 콕 꼬집어 특정할 수 없는 모호함이 짙게 배어 있는, ‘매우 중국적인’ 용어다. 자잘한 것에 일일이 신경쓰지 않고 큰 줄기를 잡아나가는 대륙의 호방함일 수도 있고, 매사에 분명함이 없이 흐리멍텅하게 사람을 현혹시키는 중국 특유의 기질일 수도 있다. 


신형 대국관계의 개념은 과거의 패턴에 대한 우려에서 출발한다.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강대국과 이에 도전하는 신흥국의 대결로 요약되는 과거의 패턴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중국은 미국의 견제를 뚫고 세계 최강국으로 ‘굴기’할 수 없다. 따라서 미·중이 서로 싸우지 않고 서로의 핵심 이익을 존중하면서 협력하면 둘 다 이득을 볼 수 있다는 논리로 미국을 설득한다. 



중국은 그동안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만들어 놓은 국제질서 속에서 일정 부분 이득을 취하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기존 질서가 중국의 핵심 이익을 해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 중국 지도부의 판단이다. 중국의 이 같은 전략은 미·중의 충돌이 세계를 불행에 빠뜨릴 것이라고 우려하는 각국의 요구에 부합하는 것이어서 세계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특히 한국은 신형 대국관계 정착을 간절히 원한다. 경제적으로는 중국에, 안보적으로는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미·중의 충돌은 그야말로 국가적 재앙이다. 실제로 미·중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그동안 양국관계를 어렵게 만든 현안 가운데 하나였던 북한 핵문제에 대한 입장 차이를 상당히 좁힘으로써 한국을 안도하게 했다. 신형 대국관계가 순조로운 출발을 한 것은 한국에 커다란 희망이다. 


하지만 신형 대국관계는 아직 실체를 알 수 없는 ‘슬로건’에 가깝다. 양대 강국만 안정을 유지하면 나머지 국가들은 모두 국제적 협력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지, 미·중 양자 간 문제가 아닌 지역 문제도 미·중의 협력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지, 신형 대국관계에서 가장 핵심적인 원칙은 무엇이 돼야 하는지 모든 것이 불투명하다. 


미국 안에서는 신형 대국관계가 중국이라는 다른 플레이어가 구소련이 차지하고 있던 과거의 위치에 대신 들어섰을 뿐 새롭지도 않고 냉전의 패턴과 다를 게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워싱턴 싱크탱크의 한 중국 전문가는 중국의 의도가 순수하지 않다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인권·법치·민주주의 측면에서 주요 2개국(G2)의 위상에 걸맞은 국제적 기준을 가지라고 요구하면 중국은 ‘우리는 아직 G2가 아닌 개발도상국’이라며 빠져나간다”면서 “그런 중국이 미국과의 관계에서만 최강대국의 지위를 요구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을 방문한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와 함께 식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중국의 신형 대국관계 제의를 ‘조건부’로 수용했다. 신형 대국관계를 갖기 위해서는 먼저 중국이 지적재산권과 통상 규칙을 지켜야 하고, 사이버 공격도 하지 말아야 하며, 지역 문제에서 주변국들을 압박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이 미국의 조건이다. 


신형 대국관계는 아직은 미완성의 개념이며 장차 어디로 굴러갈지 모르는 생물과 같은 존재다. 특히 미·중 양국의 틈바구니에 있는 한국과 같은 나라는 신형 대국관계가 향후 어떤 형태로 전개되는지 주시할 필요가 있다.


분명한 것은 과거 냉전시대든, 새로운 국제질서든 자국의 핵심 이익을 강대국이 지켜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유신모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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