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스몰 딜’보다는 커야 할 하노이 정상회담
본문 바로가기
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아침을 열며]‘스몰 딜’보다는 커야 할 하노이 정상회담

by 경향글로벌칼럼 2019. 2. 1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화법을 요약하면 ‘이전 행정부에선 하지 못했던 일들이 내가 대통령이 됐기 때문에 해결되고 있다’는 식이다. 북한 문제로 가면 목소리에 힘이 더 들어간다. 자신은 아직 북한에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았지만 북한은 억류한 미국인들을 돌려보냈고, 15개월 동안 핵 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를 중단했으며, 미군 유해를 송환했다고 강조한다. 만약 자신이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면? 한반도에는 진즉 전쟁이 났을 것이라고 한다.

 

한반도 정세는, 또 북·미 관계는 지난 1년간 대결에서 대화로의 극적인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는 것을 전적으로 반박하기는 어렵다. ‘최대의 대북 압박’ 정책이 통했기 때문인지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조야의 우려에도 북한과의 대화에 드라이브를 건 것은 분명하다. 그는 이를 “대담하고 새로운 외교”라고 했다. 베트남 하노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관계가 좋다” “김 위원장의 지도력으로 북한은 경제강국이 될 것”이라고 하고, 북한도 “트럼프 대통령의 긍정적 사고방식을 믿는다”고 한다.

 

외교가에 실패하는 정상회담은 없다는 말이 있다. 어느 두 나라가 정상회담을 기획할 때 외교 라인들이 사전에 주요 의제에 대한 합의 도출 가능성을 타진하고 내놓을 게 있을 때 정상회담 일정을 확정하는 게 일반적인 패턴이기 때문이다. 북·미 정상회담은 다르다. 이번 역시 지난해 6월 싱가포르 1차 정상회담 때처럼 양 정상의 결정으로 회담 일정이 공개되고, 후속 실무협상을 통해 구체적인 합의안을 조율하는 방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차 회담을 앞두고선 말도 줄이고 있다. 트럼프답지 않게 신중하다는 인상마저 준다. 승리주의, 성과주의에 집착하는 그는 국정연설에선 “한반도 평화를 위한 역사적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 66년간 ‘제한 전쟁’ 상태인 한반도의 근원적 구조가 한두 번의 협상으로 끝날 것으로 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양측이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 항구적 한반도 평화 구축, 완전한 비핵화 등에 합의한 것은 출발이다. 함께 가야 할 공동의 목적지를 설정한 것이다. 이번에는 이를 위한 각각의 ‘행동 대 행동’ 계획을 구체화해야 한다. 북한은 실제로 핵무기를 포기할 의지가 있는지, 미국은 그에 상응한 조치를 할 의향이 있는지가 하노이에서 드러날 것이다. 서로에게 ‘진실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역사적 노력’이 어떤 결말을 그릴지, 현재로선 장담하기 어렵다. 그 역시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고 했다. 다만 그는 지난해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하지 않는 한 비핵화가 오래 걸려도 상관없다”고 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지난달 “궁극적으로 미국민의 안전이 목표다” “위험을 줄이고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 확장 능력을 줄이기를 원한다” 등의 언급을 했다. 그러다 보니 이번 회담이 ‘스몰 딜’, 즉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감축을 대가로 미국이 최소한의 상응조치를 제공하는 수준에서 그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정상회담에 대한 회의론도 고개를 든다. 애당초 핵을 포기할 생각이 없는 김 위원장을 만나봐야 시간 낭비라는 게 요지다. 트럼프 대통령도 눈에 확 띄는 합의가 없을 줄 알고 있으니 국정연설에서 북한 관련 메시지를 짧게 하고, ‘북한 비핵화’란 표현을 쓰지 않았으며, ‘역사적 노력’을 운운한 것 아니냐는 나름의 추론을 내놓는다. 한반도 운명이 기로에 선 지금, 중요한 것은 협상이 중단 없이 꼬리를 물고 지속되는 것이다. 도출한 합의를 서로 이행하고, 이를 기반으로 다음, 그다음의 합의와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런 연쇄적 움직임이 불신을 신뢰로 바꿀 수 있고 빅딜로 귀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18년이 선언의 해였다면, 2019년은 실천의 해로 만들어야 한다.

 

최종 목적지는 북한의 핵시설, 핵물질, 핵무기를 모두 없애는 비핵화와 체제보장이다. 소소한 딜로 기약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이 마냥 늘어져서는 곤란하다. 속도가 필요하다. 미국 내 사정도 느긋하지는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4년의 반환점을 돌았는데 러시아 스캔들 특검, 민주당의 하원 장악 등으로 국내정치 상황이 곤궁한 처지다. 하노이에서 양측이 잠재울 스몰 딜보다 큰 합의를 공개해야 북·미 협상 회의론을 희석시키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늘려 협상의 동력을 키워나갈 수 있다. 이번에는 ‘악순환’ ‘실패의 역사’로 덧칠된 사반세기 북핵 협상을 마무리해야 한다.

 

<안홍욱 국제부장>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