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용접외교’ 이후를 생각한다
본문 바로가기
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세상읽기]‘용접외교’ 이후를 생각한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9. 2. 12.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이달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된다. 작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8개월 만이다. 이번 회담의 관전 포인트는 북한 비핵화의 세부 이행계획이 합의문에 포함되느냐 여부이다. 물론 이에 상응하는 미국의 조치가 무엇이냐에 따라 북한 비핵화의 범위, 방법(순서), 일정 등이 구체적으로 정해지게 된다. 비핵화 과정은 100m 달리기가 아닌 마라톤이다. 북한 핵무기 개발도 그랬다.

 

김일성이 계획한 핵무기 개발의 뿌리는 6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9년 평안북도 영변의 구룡강 근처 ‘가구공장’ 위장 간판을 달고 출발한 핵센터가 불편한 진실의 씨앗이었다. 이후 북한은 영변핵센터를 핵 단지(일명 ‘분강지구’)로 확장하면서 여기에다 핵무기 관련 시설들을 짓기 시작, 현재 건물만 390개에 달한다. 미국이 북한의 핵 활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시점은 5㎽ 흑연감속로를 착공 7년 만에 가동한 1986년부터였으며 이후 영변 핵시설들은 미국 정찰위성의 표적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며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되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의미를 밝히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13년 전 1차 핵실험을 거쳐 지금까지 여섯 차례의 핵실험을 마친 북한에 위장 간판은 더 이상 쓸모가 없다. 북한은 되레 2012년 4월 헌법 전문에다 핵보유국임을 명기했다. 이후 북한 비핵화는 가까이 가면 갈수록 멀어지는 ‘무지개’가 됐다.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제네바합의, 6자회담, 9·19공동성명, 2·13합의, 남북정상회담 등은 무지개를 좇고서 남은, 말하자면 미완성 북한 비핵화의 훈장들이다.

 

비핵화를 두고 벌이는 유관국들 간 협력과 긴장 관계는 초식 동물들처럼 여러 개의 위(胃)를 거쳐야 완전히 소화가 되는 단계적이고도 복잡한 구조다. 그러다보니 안타깝게도 북한 비핵화는 두번째 위도 통과하지 못하고 수십년째 첫번째 위에서만 되새김질을 하고 있다. 비관론자들은 벌써부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끝나고서도 두번째 위로 넘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암울하게 전망한다.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라는 것이다.

 

누구는 이 불편한 진실과 이제는 작별을 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애당초 북한 비핵화는 실현 불가능한 환상이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는 완전한 비핵화가 대리석 바닥에 내던져진 유리컵이 됐다고 비웃는다. 핵무장 주장도 다시 스멀스멀 나오고 있다. 여차하면 ‘핵의병(核義兵)’들 주도로 팟캐스트 ‘우리도 핵 가질레오’가 등장할 수도 있겠다 싶다. 이 모두 비핵화 협상 실패라는 참사 뒤에 닥쳐올 ‘퍼펙트 스톰’이 한반도를 강타할 수도 있음을 자각하라는 경고이자 반동처럼 보인다. 동시에 전쟁터 참호에서처럼 숨죽인 채 우리의 시선은 북·미 정상회담 실무협상을 향해 있었다.

 

2박3일 동안 ‘평양대첩’을 치른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지난달 31일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의 한 연구소가 주최한 연설에서 김정은이 플루토늄과 우라늄 농축시설의 폐기 및 파기를 이미 약속했다고 밝혔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폭스뉴스 방송에서 피력한 북한 비핵화의 낙관적 전망에 앞서 금년 1월 퇴역한 빈센트 브룩스 전 한미연합사령관 역시 미국 공영방송(PBS)과 가진 인터뷰에서 김정은이 핵무기를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으로 인식했다. 편견이 분석을 오염시킬 수 있는 위험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어도 비건, 폼페이오 그리고 브룩스의 주장 모두 ‘보면 믿겠다’가 아니라 ‘믿으면 보인다’에 방점이 찍힌 것으로 해석됐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말이 최소 ‘영변 플러스 알파’로 귀결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문재인 정부가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평양과 워싱턴을 연결하는 용접공 사고(思考) 너머의 국가책략을 어떻게 정교하게 짜느냐이다. 왜냐하면 나는 김정은이 1968년 1월 나포한 미국 정찰함 푸에블로호를 트럼프에게 정치적 선물로 되돌려 줄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용접외교’에서도 ‘시아게’(‘마무리’를 뜻하는 일본어)가 중요하다면 비핵화 협상 중 불씨가 한·미동맹의 부비트랩인 주한미군 감축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철회로 튀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 관건은 현 상황에 대한 오인식을 서로 얼마나 최소화하느냐이다.

 

<이병철 | 평화협력원 부원장>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