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양치기 소녀 옐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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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여적]양치기 소녀 옐런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10. 29.

 이솝 우화의 양치기 소년은 거짓말을 거듭해 신뢰를 잃은 거짓말쟁이로 묘사됐지만 사실 양치기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풀이 많은 곳을 찾으려면 지리에 능통해야 하고, 먼 곳을 지치지 않고 오가는 체력도 필요했다. 양떼를 이끌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려면 별자리도 잘 알아야 하고, 양떼와 양치기 개를 이끄는 리더십도 갖춰야 했다. 늑대와 맞닥뜨렸을 때는 물러서지 않는 용기를 발휘해야 했다.

그래서 양치기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돌팔매로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린 양치기 다윗은 후에 이스라엘 왕이 됐다. 중국 한나라 무제 때 복식(卜式)이라는 사람은 양을 키워 큰 부를 일군 부자였는데, 통 큰 기부로 귀감이 됐고 벼슬을 받아 백성까지 잘 다스렸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파울로 코엘료는 소설 <연금술사>에서 자아를 찾아가는 양치기 청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_연합뉴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이사회를 이끌고 있는 재닛 옐런 의장이 월가 금융인들로부터 ‘양치기 소녀’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옐런은 지난 28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를 마친 뒤 성명서에서 “다음 회의(12월)에서 금리 인상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취임 후 첫 위원회를 열었던 지난해 3월 이후 꾸준히 금리 인상을 시사해왔다. 하지만 미국 금리는 항상 제자리, 양치기 소리를 듣는 게 무리는 아니다. 앞서 연준 의장이었던 벤 버냉키도 양치기 논란에 휩싸였다. 시중에 돈을 무차별적으로 푸는 대규모 양적완화로 ‘헬리콥터 벤’으로 불렸던 버냉키는 양적완화 축소 및 중단에 나서겠다고 수차례 언급했지만, 시행은 하지 않았다.

옐런을 거짓말쟁이 양치기에 비유하는 것이 그리 적절해 보이지는 않는다. 양치기는 심심풀이로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쳤지만, 옐런은 ‘늑대(금리 인상)가 나타날 수 있으니 대비하라’고 경고했다. 양치기는 오히려 월가 금융인들을 지칭하는 게 더 어울린다. 그들은 항상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장밋빛 희망을 내놓는다. 이는 매수·중립 의견이 99%에 이르는 국내 여의도 증권가 애널리스트들도 마찬가지다. 양치기는 일상이 지루했기 때문이지만 금융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했으니 더 나쁘다고 할 수 있다.


안호기 | 논설위원 haho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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