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오바마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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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여적]오바마의 유산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8. 4.

온실가스 감축 얘기만 나오면 작아지는 나라가 미국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국제협약인 교토의정서를 탈퇴해 국제적 비난을 받은 바도 있다. 전 세계 온실가스의 4분의 1 이상을 배출하는 나라가 그것을 해결하자는 데 나몰라라 했으니 할 말 없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그제 야심찬 온실가스 감축안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미국 내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에 대비해 32% 줄이는 내용이다. 계획대로 하면 미국 내에서 석탄 화력발전소 신설이 불가능해지는 것은 물론 기존 발전소도 수백곳 폐쇄해야 한다. 환경단체 시에라클럽은 “위대한 조치”라며 역사상 가장 담대한 오바마의 기후변화 대응에 찬사를 보냈다.

이 감축안에 공화당과 석탄업계, 석유·가스업계 등이 반발하고 있다. 이 규제가 시행되면 전기료가 올라 소비자 부담이 커지고, 이로 인해 경제가 위축돼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교토의정서에 반대하던 논리 그대로다. 내년 대선에서 표를 얻으려는 공화당의 대선 주자들은 발빠르게 오바마 때리기에 나섰다. 탄광업·전력사업이 중요한 수입원인 웨스트버지니아 등 20여개 주도 소송으로 감축안 시행을 막겠다고 나섰다. 오바마가 또다시 사면초가에 빠진 형국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_경향DB



미국의 정치권은 최근 10여년간 극심하게 양분돼 ‘두 개의 나라’라는 말까지 나온다. 오바마 역시 임기 내내 의료개혁,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 이란과의 핵협상 등을 놓고 공화당과 첨예하게 대립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기 말에 또다시 민감한 온실가스 감축안을 제시한 자신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이란과의 핵 협상 타결 이후 ‘오바마의 유산(legacy)’이라는 말이 미 언론에 자주 나온다. 그가 남길 업적에 대한 기대가 담긴 말이다. 오바마가 극심한 대립 속에서도 자기 정책을 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대법원의 지원과 다수당인 공화당 의원들의 협조가 있었기 때문이다. 백악관으로 야당 의원들을 불러 식사하는 등 여야 의원들과 열심히 소통한 것이 오늘의 결과를 낳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그가 남길 가장 큰 유산은 당파적 대립을 극복하는 타협과 설득, 소통 능력이 될지도 모른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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