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국민은 전쟁을 포기하고, 국가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으며, 군대를 보유하지 않는다.’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일본 헌법 9조의 핵심 내용이다. 어떤 형태의 전쟁도 포기한다고 헌법에 못박은 나라는 세계에서 일본이 유일하다.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가 “일본 헌법 9조는 일본인의 머리 위에 빛나는 월계관”이라고 찬사를 보낸 까닭이다.
일본이 자진해서 만든 조항은 아니다. 구체적 성안(成案) 과정에 대해 약간의 이설(異說)이 있지만 2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미국의 압력을 일본이 마지못해 수용했다는 게 대체적인 줄거리다. 당시 일본은 제국헌법을 대체할 헌법을 만들라는 미국의 요구에 군대의 존재를 명기한 초안을 작성, 마쓰모토 국무대신을 통해 제출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이에 시데하라 총리가 맥아더 사령관을 찾아가 “이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은 전쟁을 없애는 것”이라며 전쟁포기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여기서 ‘문제’란 천황제를 가리키는 말이다. 시데하라는 “천황제를 유지하지 못하면 나는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남의 나라를 침략하고 죄 없는 사람을 죽인 데 대한 사과와 반성의 차원에서 헌법 9조를 만들었다는 정황은 찾아보기 어렵다. 전쟁 포기를 약속하고 천황 존속을 받는 타협을 한 셈이다.
일본 도쿄에서 열린 ‘헌법9조세계대회’에 참가한 시민들 (출처 :경향DB)
패전의 시련에서 벗어나 먹고살 만해졌을 때 일본의 보수파들이 속내를 드러내는 것은 어쩌면 예상된 일이다. 나카소네 전 총리는 공식적으로 개헌을 주장했고, 집권 자민당도 그런 강령을 채택한 바 있다. 이름만 자위대일 뿐 사실상의 군대조직도 키워왔다. 아베 정권의 개헌 추진은 이런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그런데 이 헌법 9조가 일본에 큰 영예를 안겨줄지도 모른다는 소식이다. 일본의 한 주부가 헌법 9조를 지키자는 캠페인 차원에서 노벨위원회에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을 했는데 이게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다만 노벨상은 개인이나 단체에만 주어지기 때문에 헌법 9조 자체가 아니라 ‘헌법 9조를 지키는 일본 국민’이 후보로 등록됐다고 한다. 결과는 미지수지만 이번 일로 일본의 군국주의 움직임에 브레이크가 걸린다면 그 자체로 의미있겠다고 생각한다.
이종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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