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불쌍한 멕시코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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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국제칼럼]불쌍한 멕시코여!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4. 13.

며칠 전 멕시코 중서부의 미초아칸 주에서 자경단원들이 무장해제를 지시하고 강행하려는 연방군과 대치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지난 몇 해에 걸쳐 멕시코 중서부의 비옥한 경작지대는 마약 카르텔 ‘성당기사단’과 ‘신세대’ 간의 세력 다툼에 휘말려 강탈, 납치, 살인이 판치는 무법천지가 되었다. 연방군조차 안전을 제대로 보장해주지 못하자 일부 주민들은 작년 초부터 자구책으로 자경단을 조직한 뒤 점차 세력을 키우고 몇 곳의 마을을 직접 통제하기까지 했다. 일부 개인과 집단의 실력행사를 통한 자력구제는 원래 금지되어야 하는 데다 자경단원들의 도덕성이 의문시되었음에도 멕시코 정부는 최근까지 그들의 무장활동을 묵인하거나 이들에게 보안부대에 공식 합류할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올해 2월 악명 높은 지명수배자인 ‘마약왕’ 호아킨 구스만의 체포, 3월과 4월 초 성당기사단의 부두목을 비롯한 실력자 두 명의 사살 등을 계기로 자신감을 되찾았기 때문인지 멕시코 정부는 자경단원들에게 무기를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고 통보했다. 정부의 합법적인 무력 독점권을 강조하면서 ‘비정상의 정상화’를 추진한 셈이다. 검찰총장은 일부 자경단원들이 성당기사단과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는 신세대로부터 무기를 공급받은 사실을 확인하고, 조직 내 알력에 따른 살인 사건과 관련해 자경단의 지도자들을 체포해 조사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정부의 조치에 반발한 자경단원들은 범죄조직과의 연계를 부인하고 아직 모든 지역에서 안전을 확신할 수 없으므로 언제든 주민들이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을 방치해선 안된다고 응수했다.

마약밀매매와 관련된 유혈폭력의 악순환, 주민들의 불안과 고통은 1990년대 초 이래 멕시코 북부와 중서부에서 그리 낯설지 않은 광경이 되었다. 이는 미국 정부가 주로 자국에서 소비되는 마약의 원산지인 페루와 볼리비아의 재배지 및 정제소를 봉쇄하거나 분배망을 장악하고 있던 콜롬비아 카르텔의 활동을 강력하게 저지하는 전략을 구사하면서 멕시코가 거래 중개지로 주목을 끌게 된 정황과 관련이 깊다.


멕시코 군인들이 티후아나에서 압수한 마리화나를 소각하고 있다. (출처 :로이터 연합)



원산지를 비롯한 주요 공급처에 대한 단속 강화에 비해 중개지에 대한 감시와 단속이 상대적으로 소홀해지면서 멕시코인들의 피해는 한층 더 커졌다. 영화 <트래픽>(2000년)이 잘 보여주듯이 콜롬비아의 카르텔이 약세를 보인 반면, 미국과 인접한 국경도시 티후아나와 시우닷 후아레스 등지에서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은 위세를 떨치게 되었다. 어찌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굴레인가? 1876년 군사쿠데타로 집권해 35년간 개발독재의 화신으로 군림하다가 거대한 혁명의 물결에 떠밀려 1911년에 실각한 세도가 포르피리오 디아스가 남겼다는 한탄이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불쌍한 멕시코여! 신과는 너무 멀리에, 그러나 미국과는 너무 가까이에 있구나!”

중세 유럽의 기독교 군사조직에서 이름을 따온 성당기사단은 사이비종교단체의 색채를 띠고 2011년 즈음에 정체를 드러낸 뒤 멕시코 중서부에서 미국으로의 필로폰과 대마초 밀매를 주도해왔다. 또 국경도시들의 마약 카르텔은 불법이주 과정에 개입해 그 통로를 제공하고 월경자들을 마약 운반책으로 활용하며 미국에서 무기를 몰래 들여오곤 했다. 그러므로 마약 카르텔이 공권력을 비웃으면서 활보하고 위협을 느낀 주민들이 무장자경단을 조직하며 박봉에 시달리는 경찰관과 하급관리들이 마약 카르텔에 매수되고 빈농과 실업자들이 웬만해선 만져보지 못할 거액에 마음을 빼앗겨 마약 운반에 가담하는 등 다양한 모습으로 불거진 문제들은 국가안보와 국제적 치안 공조를 넘어 ‘인간안보’의 증진을 위한 초국적 차원의 협력 과제로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박구병 | 아주대 교수·서양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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