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진시황의 혈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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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여적]진시황의 혈통

by 경향글로벌칼럼 2013. 7. 8.

중국 칭화대학이 소장하고 있는 전국(戰國)시대 죽간군을 일컫는 청화간(淸華簡)은 진시황의 분서갱유를 피해 2300여년 만에 햇빛을 본 기록으로 간주된다. 도굴되어 해외에 유출됐다가 2006년 홍콩 유물시장에 나온 것을 2008년 칭화대 졸업생이 모교에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총 3346개에 이르는 청화간에는 사서삼경의 하나로 서경(書經)으로도 불리는 상서(尙書)의 빠진 부분 16편을 비롯해 실전(失傳)한 역사 저작이 대거 포함돼 있어 학계를 들뜨게 했다.


칭화대 출토문헌연구보호센터 연구진은 138개의 죽간으로 구성된 전편 23장의 역사 문헌을 특별히 계년(系年)이라고 명명했다. 표제가 없어 잠정적으로 그렇게 이름을 붙인 것인데, 서주(西周) 초기부터 전국시대 전기까지 역사를 편년체로 기술하고 있다. 기원전 380~370년 초(楚)나라 숙왕(肅王) 시기에 씌어진 것으로 연구진은 보고 있다. 놀라운 것은 계년에는 좌전(左傳)·국어(國語)·춘추(春秋)·사기(史記) 등에는 전하지 않는 새로운 사건은 물론 기존 전적을 수정해야 할 내용도 상당수 담겨 있다는 점이다.


최근 <중국사회과학보>에 실린 하얼빈사범대 왕훙쥔(王洪軍) 교수의 글이 그 한 예다. 왕 교수는 계년을 인용해 진(秦)나라의 기원이 동쪽지역이라고 주장했다. 계년에 의하면 주나라 성왕(成王)은 상(商)나라 유민의 반란을 진압한 뒤 지금의 동부 산둥성(山東省) 상개(商盖)의 주민을 서부 간쑤성(甘肅省) 주어로 이주시켰는데, 이들이 바로 진나라의 조상이 됐다. 그전까지 진나라의 조상은 산둥의 담과 거 등과 이웃하면서 영이나 진(秦) 일대에 살았다. 이들은 이주 후 주나라 왕실의 말을 기르는 일을 하다가 주나라가 동천(東遷)한 뒤 제후가 된 것이다. 왕 교수는 진나라의 기원에 대해 동이설(東夷說)과 서융설(西戎說)이 대립했으나 계년의 발견으로 동이설이 설득력을 얻게 됐다고 결론을 내렸다.


중국의 진시황


진시황이 동이족의 후예라는 주장은 흥미로운 얘기다. 랴오허(遼河)·다링허(大凌河) 유역의 훙산(紅山) 문화 유적과 상나라 역사 등에서 느껴지는 동이의 숨결과 함께 우리의 잃어버린 ‘계년’에 대한 갈망이 있어서일 것이다. 청화간 계년처럼 고구려 유기(留記)나 백제 서기(書記), 신라 국사(國史) 같은 게 불쑥 나타날 일은 없을까.



신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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