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가안보국(NSA)이 유럽연합 본부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을 포함해 38개국의 주미 대사관에 대해 광범위하게 도청과 스파이 활동을 벌였다는 구체적 의혹이 제기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어제 전직 미국 중앙정보국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으로부터 입수한 NSA 비밀문건을 인용해 미국 NSA의 각국 대사관에 대한 도청과 스파이 활동의 진상을 보도했다. 내용은 충격적이다. ‘감시 목표물’로 설정한 각국 대사관에 도청기를 설치한 것은 물론, 특별 안테나를 이용해 전파까지 탐지하는 등 전방위로 스파이 활동을 해온 게 드러났다. 미국 NSA의 ‘감시 목표물’ 목록에는 소위 ‘테러와의 전쟁’의 잠재적 적대관계인 중동 국가는 물론 프랑스 등 유럽 국가를 비롯해 한국과 일본, 멕시코, 인도 등이 포함됐다. 미국의 불법적인 도청과 스파이 행위가 소위 그들이 내세우는 명분인 ‘테러와의 전쟁’ 차원을 넘어서 이뤄져왔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 가디언이 입수한 또 다른 문건에는 이들 대사관에 대한 도청과 스파이 활동의 목적이 적시돼 있다. 대상국들의 내부 정보와 정책상의 이견 등을 포착하려 한다는 내용이다.
제목 NSA 본부 (경향DB)
미국 정부는 스노든이 자국민을 대상으로 무차별적 개인정보 수집을 했다는 것을 폭로한 뒤 파장이 일자 국가안보, 테러 대비 등을 내세워 당위를 강변해왔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개인의 자유에 대한 광범위한 침해가 국가안보를 이유로 정당화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설령 그것을 미국 내의 논란으로 남겨두더라도, 이번에 드러난 세계 각국 대사관에 대한 도청과 스파이 활동은 미국이 내세우는 안보와 테러 대비라는 기치로 설명되지 않는다. 미국이 우방과 동맹을 강조하는 나라들의 대사관을 목표물로 설정해 도청을 저지른 것에서 보듯, 오로지 미국의 이익과 세계 지배 전략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라크 등을 침공할 때 내세운 국제법, 민주주의 수호라는 잣대에 대해봐도 철저하게 반한다.
http://www.guardian.co.uk/
이번 사태의 심각성은 미국이 아직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 있다. 미국 정부는 “다른 외국 정부가 수집하는 수준의 정보활동”이라고 변명하고 있다. 국제법적으로도 불법이고, 민주적 가치에도 명백히 반하는 주권국 대사관들에 대한 도청과 스파이 활동 같은 유사한 행위를 계속할 수도 있다는 무서운 논리다. 그래서 미국의 이번 도청과 스파이 활동의 불법을 분명히 규명하고, 미국 정부의 사과와 재발 방지에 대한 약속을 국제사회가 도출해 내야 한다.
'경향 국제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적]진시황의 혈통 (0) | 2013.07.08 |
---|---|
[기고]‘대기오염 국가’ 중국의 변화 (0) | 2013.07.04 |
중동분쟁의 또 다른 뇌관 ‘물’ (0) | 2013.07.01 |
[사설]한·중 정상회담 이후 박 대통령의 과제 (0) | 2013.06.28 |
[정동칼럼]민족주의에 집착, 실속 잃지 말아야 (0) | 2013.06.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