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트럼프의 ‘나 홀로 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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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여적]트럼프의 ‘나 홀로 집에’

by 경향글로벌칼럼 2018. 12. 27.

벚꽃 분분하게 날리는 봄이면 곳곳에서 노래가 들려온다. ‘벚꽃엔딩’이다. 밴드 버스커버스커의 노후는 이 노래 한 곡이 책임질 거라고들 한다. ‘벚꽃 연금’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이유다. 가을이 절정에 이르는 10월31일엔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 어김없이 소환된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10월의 마지막 밤을”이라는 도입부 가사 덕이다.

 

영화는 어떨까. 크리스마스 때면 반드시 TV 전파를 타는, 이른바 ‘성탄절 사골 영화’들이 있다. 로맨틱 코미디 <러브 액츄얼리>와 가족영화 <나 홀로 집에> 시리즈(총 5편)가 양대 산맥이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두 작품은 특선 영화 목록에서 빠지지 않았다.

 

1990년 선보인 <나 홀로 집에>(원제 Home Alone)는 2003년 <러브 액츄얼리>가 등장할 때까지 크리스마스 대표 영화의 위상을 독차지했다. 성탄절에 홀로 집에 남겨진 소년 케빈이 온갖 아이디어를 동원해 집에 든 도둑들을 막아내는 재기발랄 모험담이다. 1편의 대성공에 힘입어 만들어진 2편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카메오로 등장한다. 케빈이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헤매고 있을 때 길을 알려주는 남성이다. 당시 이 호텔 소유주가 트럼프였다.

 

트럼프가 성탄절 전날인 24일 오전(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I am all alone (poor me) in the White House…”라는 글을 올렸다. ‘나 홀로 백악관에’ 남은 자기가 불쌍하다는 한탄이다. 그는 당초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연말연시를 보낼 예정이었으나, 연방정부 업무정지 사태로 휴가 계획을 취소하고 백악관에 머물러왔다. 부인 멜라니아는 마러라고로 떠났다가 24일 오후 백악관으로 돌아왔다.

 

트럼프는 공감이나 위로를 바랐겠으나 돌아온 건 신랄한 비판이었다. “(그렇게 외로우면) 당장 대통령 전용기 타고 아프가니스탄 파병 부대에 위문 가라” “수많은 참전용사들이 홈리스 신세로 거리를 떠돌고 있는데, (당신이) 불쌍하다고?” 같은 트윗이 쏟아졌다. 자신을 가엾게 여길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세계 최강대국의 최고권력자라면? 자기 연민에 앞서 타인부터 돌아보는 게 미덕, 아니 의무다.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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