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태평양의 쐐기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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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더글러스 러미스 칼럼

오키나와, 태평양의 쐐기돌

by 경향글로벌칼럼 2012. 5. 30.

더글러스 러미스 | 미국인 정치학자·오키나와 거주


다음은 내가 5월19일 아이치(愛知현 아이치대학교에서 했던 강연의 일부이다.

냉전 중에 미군은 오키나와를 ‘태평양의 쐐기돌(keystone)로 불렀다. 그때 쐐기돌의 의미는 미국의 대공산권 봉쇄 차원에서 이해됐다.

이제 냉전은 끝났다. 미국은 선제공격 정책을 더 선호해서인지 봉쇄 정책을 버렸다. 그런 점에서 쐐기돌이라는 메타포는 더 이상 원래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럼에도 많은 일본인들은 일본 내 미군기지의 75%가 오키나와에 있는 이유가 오키나와의 전략적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어떤 사람이 내게 말했다. “당연히 오키나와에 기지를 둬야죠. 그게 더 가깝잖아요.” “어디에 더 가깝다는 말이죠?” 내가 물었다. 그는 답하지 못했다. 그가 만약 북한, 중국에 더 가깝다는 걸 의미했다면 규슈(九州만큼 북한, 중국의 수도에 더 가까운 곳은 없다. 고정관념은 세계지도까지 마음대로 상상할 정도로 큰 힘을 갖는 것일까.

오키나와는 이제 어떠한 군사전략에서도 쐐기돌이 아니다. 다만 그것은 정치적 쐐기돌이 된 것 같다. 이를 이해하려면 건축에서 쐐기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떠올려보는 것이 유용하다. 쐐기돌은 아치(arch를 만드는 데 필수적인 돌이다. 쐐기돌은 맞댄 두 기둥이 무너지지 않게 한다. 쐐기돌이 아치의 정점에 있기에, 돌들이 아래로 떨어지려는 힘은 가운데로 밀어주는 힘으로 바뀐다. 그럼으로써 아치는 무너지는 대신, 단단해지고 큰 무게를 버틸 수 있다.

 

오키나와의 주요 미군기지 ㅣ 출처:경향DB

이러한 쐐기돌의 이미지가 어떻게 오키나와에 적용되는 걸까? 몇 년 전 나는 도쿄에서 열린 심포지엄에 참석했다. 심포지엄이 끝난 뒤 두 명의 중년여성이 말을 걸어왔다. “러미스씨, 일본의 평화헌법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자는 운동이 있어요. 그게 성공한다면 정말 멋질 것 같아요. 가능하겠죠?” 나는 다소 불친절하게 대답했다. “아니오. 일본이 미국과 상호 안보조약을 맺고 있는 한, 일본이 자국영토에 미군기지를 두는 한, 세계는 일본 평화헌법을 그 정도로 칭찬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들은 놀랐는지 눈이 커졌다. 그중 한 명이 말했다. “뭐라고요? 당신 말은 우리가 미군기지를 없애야 한다는 거죠? 그러면 누가 우리를 방어해주고요?”

이 여성들에게서 첫번째 진술에서 두번째 진술이 나오기까지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둘 중 하나만 보면 말이 된다. 전쟁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군대를 보유하는 것이라는 입장에 많은 똑똑하고 착한 사람들이 동의한다. 일본 헌법처럼 전쟁을 포기한다는 내용을 헌법에 포함시키는 것이 전쟁을 막기 위한 더 좋은 방법이라는 입장에도 많은 똑똑하고 착한 사람들이 동의한다. 문제는 그 둘을 모두 믿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느냐는 것이다. 광범위한 일본의 여론이 평화헌법과 미·일 안보조약을 동시에 지지한다. 어째서 이 두 가지 모순되는 사고방식이 공존하는 것일까?

답은 ‘오키나와’에 있다. 일본인들의 관념 속에 오키나와는 일본이기도 하고, 일본이 아니기도 하다. 가능한 한 많은 미군기지를 오키나와에 둠으로써 그 기지들은 일본에 있기도, 일본에 있지 않기도 하다. 기지 문제의 다른 이름은 ‘오키나와 문제’이다. 이 문제를 고민해보고 싶은 일본인들은 비행기를 타고 오키나와를 방문해 평화관광을 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그들은 자신이 사는 곳에서 가까운 기지들을 그런 식으로 방문하는 법이 없다. 도쿄에서는 요코스카 또는 요코타 기지를 당일로 다녀올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미군기지=오키나와’ ‘평화헌법=일본’이라는 등식으로 보는 걸 선호한다. 이런 식으로 오키나와는 모순되는 사고방식이 붕괴되지 않도록 하는 쐐기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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