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애초에 대북 식량지원 카드를 꺼낸 것은 의외였다. 미국의 식량지원이 인도주의에 기초하고 있음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적 고려 또한 없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 대북 식량지원을 시작한 1995년 이후 지금까지의 흐름은 북한의 식량사정이 아니라 북·미관계와 북핵 등 정치적 상황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북·미관계가 좋았을 때는 연간 수억달러를 지원했지만 대치상황에 빠졌을 때는 전무했다. 북한이 ‘항상 배고픈 나라’였음을 감안한다면 미국의 결정은 정치적 목적이 강했다는 것이 명백해진다. 따라서 지금처럼 북·미 간 정치적 대화가 단절된 시기에 대북 지원을 고려한다는 것은 분명 새로운 양상이다.
미국의 식량지원 검토는 북한에 도발할 명분을 주지 않으려는 선제적 대응의 일환이다. 지난해 11월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한국이 더 이상 북한의 도발을 인내할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하자 미국은 긴장완화를 원하기 시작했다. 북한과의 정치적 대화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인도주의적 접근이었다.
그런데 미국은 지금까지도 결단을 못 내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한국의 반대를 원인으로 꼽는다. 물론 한국이 식량지원을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미는 이미 이 문제에 대해 각자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합의했으므로 한국의 반대가 미국의 식량지원을 막는 결정적 요소가 될 수는 없다.
가장 큰 이유는 북한에 대한 불신과 부정적인 미국 내 여론 때문이다. 지원된 식량이 전용돼 취약계층에 전달되지 못하고 오히려 정권을 강화시켜줄 것을 우려한다. 미국이 모니터링(분배 감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은 2008년 북한과 합의한 ‘국제적 기준’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모니터링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어 요원을 배치하고 어느 곳이든 24시간 내에 방문해 조사할 수 있는 기존의 모니터링에 ‘시장접근권’과 ‘사후 평가’를 추가하려고 한다. 지원된 식량이 북한의 국가배급체계(PDS)에 흡수되지 않았는지 장마당을 비롯한 시장에서 직접 확인하고 식량제공 전후에 취약계층의 영양상태를 각각 체크해 이들이 식량을 섭취했는지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그만큼 미국의 불신은 크다.
북한은 2009년 3월 미국 식량지원단을 추방하고 33만t의 식량을 포기한 적이 있다. 당시 북한은 하루 600g이던 배급량을 150g까지 줄일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거부한 것은 국내 정치적 요인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장거리 미사일 발사 및 2차 핵실험 등을 앞두고 대미 적개심을 고취시켜야 하는 마당에 ‘미국의 친구들로부터’라는 글귀가 선명한 식량포대를 주민들에게 나눠줄 수 없었을 것이다.
상황은 지금도 유사하다. 북한은 지금 후계문제로 군부와 강경파의 입김이 커지고 있고 내부결속도 다져야 하는 상황이다. 북한이 미국에 추가 협의를 요청하거나 지원을 재촉하지 않는 것도 식량지원이 양날의 칼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이 만성적인 식량부족 국가라는 것, 이로 인해 수많은 어린이·노약자 등 취약계층이 고통받고 있다는 점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다. 미국이 정말로 ‘인도주의적 원칙’을 따른다면, 지원해야 할 인도적인 이유는 충분하다. 지원시기를 놓치고 북한의 추가도발이 일어난다면 미국은 국제사회의 비난에 직면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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