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가을이 오면, 평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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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정동칼럼]가을이 오면, 평화도

by 경향글로벌칼럼 2018. 9. 7.

봄에 씨앗을 심고, 가을에 결실을 거둔다. 식상할 수도 있지만 누구나 동의할 수밖에 없는 자연의 법칙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반드시 적중하는 것은 아닌 것 같고, 벗어날 수도 있다. 홍수, 가뭄 또는 병충해가 심하면 가을에 열매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지난 4월27일, 모두의 가슴에 희망을 심으며 평화의 봄을 알렸다. ‘평화,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적절한 표현이었다. 2013년 초부터 시작된 한반도 위기 4년의 고비 끝에 찾아온 희망의 씨앗이었으며, 더욱이 막다른 골목 같은 2017년을 몸서리쳐지는 전쟁공포로 지나온 터라 2018년 봄이 우리에게 준 희망은 숨 막히도록 극적이었다. 무너진 나라의 근본을 회복하려고 꽁꽁 얼어버린 겨울의 많은 날들을 참아내며 마침내 정권교체를 이루고 맞이한 2017년의 봄처럼 2018년의 봄이 주는 희망은 감추기 어려웠다.

 

북한 시민들이 6일 평양 지하철역사 안에서 지난 5일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사단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접견 소식을 보도한 노동신문 기사를 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여름의 초입에서 이루어진 북·미 정상회담은 70년 적대 및 불신구조를 바꾸는 대전환점을 만들었다. 뜨거운 여름 볕에 열매가 영글듯 평화의 가을로 가는 데는 문제가 없어보였다. 하지만 길게는 70년 냉전, 짧게는 25년 북한 핵 위기가 만든 얼음의 두께는 생각보다 견고했다. 실무협상으로 넘어가면서 불신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두 정상은 실무협상으로 넘어가면 다시 불신구조가 드러난다는 것을 간과했던 것 같다. 정치적 종전선언은 아무런 문제없이 추진되리라고 생각했지만, 미국은 북한이 미군철수를 들고나올 것이라고 의심했고, 북한은 미국이 일방적인 핵폐기만을 요구한다고 의심했다. 교착상황과 기싸움 속에서 초반부터 등장했던 냉소와 의심은 다시 커졌으며, 폼페이오의 3차 방북이 무산되는 상황까지 와버렸다.

 

그러나 남겨둔 카드가 있었다. 그것은 정상 간 타협인데, 폼페이오의 3차 방북 때 김정은 위원장이 만나지 않은 것은 비장의 카드로 아껴둔 것일 수 있다. 트럼프도 2차 북·미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내비친다. 물론 11월 미국의 중간선거까지 이대로 갈 수도 있다. 결국 적어도 교착상태를 푸는 양보는 북한으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는 국면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북한으로서는 트럼프만 믿고 자신들의 핵심 지렛대를 던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다시 움직이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우리뿐이다. 그런 인식으로 3월5일 방북 6개월 만에 특사단이 다시 북으로 가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고 왔다.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특사 방문으로 죽어가는 불씨를 일단 살려낸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미국에 종전선언을 먼저 해주기를 요청했지만, 과감한 비핵화조치를 하겠다는 결심을 내비쳤다. 또한 종전선언을 할 경우 한·미동맹 약화나 미군철수를 요청할 것이라는 의심에 대해 그럴 의도가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핵신고서 제출과 종전선언의 맞교환 제안은 기본적으로 북·미 문제라는 점에서 특사단에 구체적으로 말했을 가능성은 낮다. 혹시 구체적인 양보조치를 들었다고 하더라도 공개할 수 없다. 이를 가지고 미국을 설득시켜야 하는데, 남북정상회담 전에 추진할 것인지 아니면 남북정상회담에서 설득을 계속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지난 4월 남측 예술단의 ‘봄이 온다’ 평양공연 당시 김정은 위원장이 즉석에서 ‘가을이 왔다’라는 제목으로 서울공연을 하자고 제안했다. 실제로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지독히도 더운 여름을 지나 지금 우리는 가을의 문턱에 있다. 한반도평화 프로세스가 여름을 지나 겨울로 가지 않고 원래 희망했던 가을이 오기를 바라고, 평화도 오기를 기원한다. 그저 오는 것이 아니라 평화가 머무는 한반도의 가을이 되기를 소망한다. 

 

온 국민이 겨울 한파 속에서 싸울 때, 정의로운 분노를 피해 죽은 척하던 적폐들이 최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서서히 사악한 고개를 쳐들고 있음을 강하게 느낀다. 그들은한번도 촛불혁명의 정당성을 수긍한 적이 없지만, 마치 기회를 줬음에도 실패했다고 비판하고 선동한다.지난봄 한반도평화를 향한 희망을 말할 때도 냉소했던 자들은 교착상황이 오자 대놓고 평화를 방해하려 한다. 제재를 푼 적도, 비핵화의 목표를 결코 버린 적도 없는데 대화를 추구하는 것은 곧 제재를 풀고, 비핵화 목표도 버린 것으로 호도한다. 이 땅에 전쟁을 영구적으로 종식하고 평화를 만들려는 사람들을 향해 또 친북프레임을 뒤집어씌운다.

 

사적 권력욕으로 다시 국민을 기만하려는 안보장사치들은 촛불의 참의미를 모욕하는 사악한 짓거리를 멈춰야 할 것이다. 북한이 아닌 우리 자신을 위해서 평화를 원하고, 우리 자녀들의 안위를 위해서 대화하려는 것이다. 조폭들의 비겁한 배짱처럼 무데뽀식 친미반북강경을 애국이라고 여기는 악의와 미몽에서 탈피하라.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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