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아베 외교는 보이고 우리 외교는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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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정동칼럼]아베 외교는 보이고 우리 외교는 안 보인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5. 7.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외교관으로서 한번 큰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노태우 정부 시절을 그리워할지 모른다. 특히 당시의 박철언 수석과 김종휘 수석과 같은 위치에서 대한민국 외교의 판을 확 바꾸는 그림을 대통령과 함께 그리고, 그 그림에 따라 정말 조직적으로 때로는 비밀리에, 때로는 공개적으로 외교를 추진해 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가질 것이다. 그 노태우 정부 당시 이들이 외교적 총력을 기울여 이루어낸 성과가 바로 “북방외교”라는 단군 이래 최대의 외교적 업적이다. 노태우 정부가 전두환 정부에 뒤이어 들어선 정부이기에 권위주의적인 성격이 지워지지 않았고, 또 반대로 “물태우”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대통령이 “보통사람”을 내세웠던 모순적이지만 국민적으로 비판을 많이 받은 정부였지만, 지금 학술적으로 회고해 보면 외교에서는 정말 대한민국을 위하여 원대하고 훌륭한 그림을 그렸고, 또 그것을 실제로 실행하면서 주변 환경과 세계를 우호적인 환경으로 바꾸고 우리의 시장을 넓히고, 또 남북통일로의 길을 넓혀 나가는 혁혁한 성과를 만들어낸 대단히 뛰어난 정부가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에게 비판을 받는 정부임에도 불구하고 또 외교를 잘하는 정부를 꼽는다면 현재 일본의 아베 정부를 들 수 있다. 물론 아베 정부의 역사인식이나 주변국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심히 불쾌하고 우리가 찬성하기 어려운 외교를 하고 있다. 다만 전후 항상 수동적이었다는 비판을 받았던 일본 외교가 이렇게 큰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조직적으로 실행에 옮기면서 자기들이 원하는 목표를 하나씩 달성해 나가는 것을 보면 과거 노태우 정부 시절의 북방외교를 보는 느낌이다. 일본을 온전한 주권을 가진 정상 국가로 만들어 국제사회에서 그 경제력에 상응하는 강대국으로 인정받고, 강대국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행사하고, 중국의 팽창으로부터 오는 위협이나 불안감을 방지하는 국제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면에서 아베 정부의 외교력은 그야말로 눈이 부시다. 그냥 도덕적으로 나쁜 정부라고 욕하고만 있을 때가 아니다.

한때 반응국가(reactive state)라는 학술적 개념까지 얻을 정도로 수동적이었던 일본이 이렇게 능동적인 대전환을 하게 된 배경에는 변화하는 주변 환경을 잘 읽고 거기서 생기는 기회의 창을 열어서 활용하는 비전과 실행력을 가진 아베 정부의 리더십이 있을 것이다. 미국의 힘이 빠지고 중국이 부상하는 주변 환경을 잘 읽고, 여기서 기회를 포착하여 미국의 힘이 빠진 공간을 보완하는 일본 자위대의 역할 확대, 집단적 자위권에 관한 해석 개헌, 미·일동맹의 글로벌 동맹화, 그에 따른 방위협력지침 개정 등은 정상적인 군사력을 보유한 강대국의 지위를 얻어 나가는 전략적 행보이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호주와 미국, 인도, 일본을 엮는 대중국 견제용 안보 다이아몬드 구축 역시 중국의 부상에서 오는 불안감을 완화하는 전략적 그림이고, 아베 총리의 미국 양원 합동연설과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한 미국의 지원 확보는 강대국의 지위와 권리, 의무를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고 행사하려는 최종 종착역이 그려진 지도를 보여준 것이다. 그야말로 정밀하게 그려진 그림을 따라 기회의 창을 열면서 밟아온 궤적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위)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8일 백악관 공식만찬에서 건배를 하고 있다. _ AP연합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떠한 상황일까? 우선 미·일동맹이 강화되고, 중·일관계가 개선되고, 미국과 중국이 경쟁을 벌이는 현 상황이 그렇게 우리의 국익에 절체절명의 상황은 아니라는 점에 있어서는 외교부의 입장에 동의한다. 지금은 제국주의 시대나 냉전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에 의해 우리의 안보가 크게 위협받고 경제적으로 시장이 막히고, 외교적으로 고립되는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협력적이고 신뢰가 쌓이는 동아시아는 어디에 있고, 신뢰 프로세스를 통한 북한 핵 문제 해결과 통일로의 길은 어디에 있고, 유라시아 구상과 중견국 외교는 도대체 어떠한 구체적 목표를 향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성과는 무엇인지 잘 보이질 않는다. 그저 일본을 욕하고만 있기에는 일본은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너무나도 분명히 알고 또 그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사고는 터지지 않았지만 외교가 실종되어 있다. 외교를 통하여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문제를 실제로 의미 있게 풀어 나가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 없다. 욕하면서 닮는다고 하는데, 외교 면에서는 아베 정부를 욕하면서 좀 닮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근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싱크탱크 미래지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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