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외교통일위원회는 그제 여야 없이 한목소리로 정부의 외교전략 부재를 지적했다. 의원들은 “정부가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외교가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하며 적극 대응을 촉구했다. 정부가 한·미동맹에만 의존하는 사이 미·일
신밀월 상황이 전개되고, 대립하던 중·일은 정상회담을 하며 관계 개선을 모색하고 있다. 반면 한·일관계는 계속 악화되고,
한·중관계는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으며 남북관계는 단절되어 있다. 미·중 경쟁의 틈에서 정부는 눈치만 살피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이날 외교통일위에 출석해 스스로 외교를 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윤 장관은 미·일 신밀월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이 더 높은 수준이라며 문제없다는 태도를 드러냈다. 그는 한국이 미국에 군사적으로 더 의존하고 있는 점을
미·일동맹보다 우월한 이유로 제시했다. 그는 마치 한국과 일본 가운데 누가 더 대미 종속적인지 경쟁하라고 주문받은 것처럼 대답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한·미동맹이 미·일동맹보다 낫다 해도 그 쓸모가 도대체 무엇이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일본의 우경화에 제동을 거는 것도 아니다. 미·중 경쟁의 상황에서 오히려 한·미동맹이 한국의
발목을 잡는 기능을 하고 있다.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한국 배치 주장, 중국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 견제가 좋은 예이다.
제7차 한중일 외교장관회의를 마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21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박근혜 대통령과 윤 장관이 지난달 비동맹운동의 시발점이 된 반둥회의 60주년 행사에는 불참한 채 남미 4개국을 순방하는 도피외교를
하는 사이 중·일은 정상회담을 갖고 관계 개선을 저울질했다. 한국이 자칫 외교적 고립에 처할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박 대통령과
윤 장관은 과거사와 외교 문제를 분리 대응한다고 하지만, 말로만 그럴 뿐이다. 여전히 과거사·외교 현안 융합외교를 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한·일관계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윤 장관은 아마 정세 변화를 잘 파악하고 있다는 걸 외교 잘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아는 것과 행동하는 건 다르다.
외교부가 그동안 행동한 결과는 추종외교, 눈치외교, 도피외교였다. 잘한 게 없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윤 장관은 지난 3월 한국
외교에 대한 정당한 우려를 두고 “고뇌가 없는 무책임한 비판”이라고 역공을 했던 태도에서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여야
의원이 윤 장관 사퇴를 촉구한 배경이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소신있게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 주기 바란다”며 그를 신임했다.
한국외교가 영영 길을 잃을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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