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진격의 아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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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정동칼럼]진격의 아베

by 경향글로벌칼럼 2013. 7. 26.

아베 신조의 자민당 정권이 7개월 전 중의원 선거에서 대승한 여세를 몰아 지난 21일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민주당 정권 3년의 거듭된 실정과 분열에 지친 일본의 유권자가 경제 회생과 국위 회복을 기대하며 표를 몰아줘 승승가도를 달리고 있다. 과연 아베 정권은 국제정치에서도 순항할 수 있을까.


아베 총리가 처한 국제정치 환경은 엄중하다. 잦은 총리 교체로 빚어진 국정혼란으로 일본의 대외적 위상은 하락해 동아시아 지역외교나 글로벌 외교에서 목소리는 낮다. 역사와 영토문제에 대한 강경책으로 한국과 중국과의 관계는 최악의 상태고, 이웃과 척진 탓에 다자외교가 잘 될 리 없다. 기댈 곳은 미국이다. 미·일동맹을 강화해 미국을 단단히 붙잡고자 한다.


일찍이 아베 총리는 워싱턴을 방문해 “일본의 귀환”을 외쳤다. 아베노믹스로 경제회생을 통해 지구공공재 제공에 기여하고 중국의 위협을 받고 있는 센카쿠 열도도 스스로 지키며 미·일동맹의 견고함을 누구도 의심하지 못하도록 “강한 일본”을 만들어 미국의 기대에 부응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국제분쟁의 해결수단으로 전쟁 혹은 무력 행사를 영구히 포기한다는 헌법 제9조의 개정 역시 강한 일본이 되고자 하는 열망의 표현이다. 미국도 개헌을 통해 일본이 경제력에 걸맞은 군사력을 갖추어 국제사회의 안녕을 위해 공헌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문제는 헌법 제9조가 갖고 있는 역사성이다. 근대국가가 갖는 당연한 권리인 전쟁, 전력(戰力), 교전권을 부인하는 제9조는 미국이 써 주었지만 기나긴 전쟁에 지친 일반 민중의 비원을 담은 것이기도 하다. 스스로 저지른 침략전쟁을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는 반성에서 나온 역사적 산물이다. 이런 점에서 개헌은 단순히 군사대국의 길을 여는 차원을 넘어서 현행헌법의 정신적 배경인 침략의 과거에 대한 반성과 관련되는 복합적인 국제정치 고려가 개입될 수밖에 없다.


(경향DB)


개헌을 향한 아베 총리의 속내를 읽으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21세기 급변하는 전략환경 속에서 보다 근대적, 세력균형적인 안보전략을 추구하고자 개헌을 원한다는 차원을 넘고 있다. 그는 조부(祖父)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의 꿈을 잇고 있다. A급 전범으로 수인(囚人)의 신세였던 기시는 냉전의 수혜로 복권됐고, 불사조처럼 총리직에 올라 미·일안보조약 개정을 추진하는 속에서 은밀히 개헌공작을 펼쳤다. 조약개정으로 군사동맹을 공고히 하고 동맹을 위해 자유롭게 무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제9조를 개정한다는 시나리오였다. 그러나 속내는 달랐다. 기시는 국민의 자유의사에 기초한 헌법을 가져야 일본의 독립이 완성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미국에 의해 강요된 헌법을 개정해 패전과 점령의 후유증을 씻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개헌은 평화헌법의 토대인 침략전쟁의 반성을 부인하는 상징적 행위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외할아버지 기시 전 총리(사진 왼쪽)


민심이반으로 하야했던 기시의 개헌 염원은 손자가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자랑스러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헌법을 바꾸자”며 유세장을 돌았고 선거결과 개헌선인 국회 3분의 2 이상의 지지도 못 얻고 국민 과반수의 지지도 확보하지 못했지만 개헌을 위해 계속 국회와 국민을 설득하겠다고 전의를 가다듬고 있다.


그러나 아베의 개헌 노력은 스스로 강조해 온 미·일동맹 강화에 결코 도움을 주지 못한다. 미국은 아시아 재균형 슬로건 하에 중국에 대한 경쟁과 협력의 복합전략을 짜고 있다. 미-일-한으로 이어지는 삼각 군사협력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균형전략, 동시에 중국을 번영의 복합그물망에 편입시키는 관여전략은 아베 정권이 과거사 논쟁으로 한국과 중국을 돌려세우는 바람에 심각한 차질을 빚고 있다. 개헌 추진은 일본의 안보정책과 과거사문제를 서로 묶어놓는 부정적 효과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에 과거에 대한 반성과 이에 대한 주변국의 인정이 전제되지 않는 한 일본의 외교력과 소프트파워는 더욱 약화될 것이다. 그리고 강한 일본을 원하는 미국에 깊은 실망을 줄 것이다. 조부의 전철을 좇는 아베의 진격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손열 | 연세대 국제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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