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자민당이 참의원 선거에서 공명당과 함께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 참의원에서 개헌 발의가 가능한 3분의 2 의석에는 20석 정도 부족하지만 아베는 선거 후에도 개헌 의욕을 감추지 않았다.
자민당이 제안한 일본 헌법 개정안의 Q&A에는 모든 ‘주요’ 국가들이 1차 세계대전 이후 헌법을 개정했지만 일본은 단 한번도 헌법을 개정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이 담겨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이 헌법을 고칠 수 있었던 이유는 헌법 원리의 주요 원칙을 뒤집지 않는 선에서 작은 변화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가령 독일 기본법에는 민주주의와 공화제, 법의 지배, 인권의 원리와 충돌하는 헌법 개정을 금지하는 조항이 있다. 나치즘으로 복귀하는 시도를 막으려는 것이다. 이탈리아도 헌법에서 공화정을 폐기하는 내용의 개헌을 금지함으로써 파시즘이나 전제정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게 한다.
(연합뉴스)
일본 헌법은 그러한 명시적인 금지 조항이 없다. 다만 인권을 “침해할 수 없는”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헌법적 금지 조항으로 이해한다. 그럼에도, 자민당이 제안한 헌법 개정안은 전후 일본 정치가 작동하는데 준거가 된 원칙을 근본적으로 뒤엎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본의 모든 학생들은 자국 헌법이 국민 주권, 전쟁 포기, 인권이라는 세 가지 원칙에 기초한다고 배운다. 하지만 내가 예전 칼럼에서 썼듯이 자민당은 인권에 대해 “공공 질서”를 해치지 않는 조건하에서만 보장할 수 있다고 규정하려 한다. 이미 존재하는 자위대를 헌법으로 인정하려고 전쟁 포기를 선언한 헌법 9조를 고칠 수는 없으니까 대신 자위대를 근본적으로 바꾸려 한다. 자위대는 국방군(國防軍)으로 개칭할 것이라고 한다. 이 명칭을 보면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국민이 아니라 국가임이 분명해진다.
주권의 문제는 명확하지 않다. 일단 개정안에서 국민은 주권자가 될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하다. 개정안은 국민에 대한 명령으로 가득 차 있는데다 주권자라면 그들 자신에게 명령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명확하지 않은 부분은 누가 새로운 주권자가 되느냐는 점이다. 헌법 개정안에는 국가 자신이 주권자로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익명의 “우리”가 나오기도 한다. 때로는 “국민들”이 언급되는데 그럴 때 국민은 “우리”가 아니라 “그들”이다. 현행 헌법에 따라 법적 제약을 받는 일왕은 개정안에서 그러한 제약에서 자유로워진다. 하지만 개정안 어디에서도 일왕의 목소리를 찾아볼 수는 없다. 일왕은 화자(話者)가 아니고 주권자이다. 직전 칼럼에서 나는 헌법의 화자가 아마 자민당 자신일 것이라고 썼는데, 확실히 개정안에서는 자민당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자민당이 그 헌법 개정안을 썼다는 것을 의미할 뿐 반드시 자민당 자신이 화자라는 의미는 아니다.
또 다른 가능성도 있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전통적인 세 가지 통치 형태 - 1인의 지배, 소수의 지배, 다수의 지배 - 이 외에도 현대에는 새로운 통치 형태가 있으니 ‘그 누구의 지배도 아닌 것(rule by nobody)’, 바로 관료제이다. ‘그 누구의 지배도 아닌 것’이 정부 내의 어떠한 사람도 책임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가 관료 집단에 대항하다가 나중에 새삼스럽게 깨달았다고 말했듯이, 일본 정부에서 관료 집단이 진정한 권력자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자민당의 헌법 개정안은 주권에 대한 뒤죽박죽된 애매함 속에서 사실은 주권을 아무에게도 주지 않도록 고안된 것일까?
대체로 자민당 개정안은 가능한 한 전쟁 이전의 정치 질서로 돌아가도록 설계됐다. 그것이 바로 “일본을 되돌리자”라는 아베의 구호가 의미하는 것이다. 독일이나 이탈리아의 집권 여당이 그런 시도를 한다면 전 세계가 우려할 것이다. 이러한 자민당의 헌법 개정안이 단순히 일본 국내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 국경 밖 먼 곳까지 영향을 미칠 것 같다.
더글러스 러미스 | 미국 정치학자, 오키나와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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