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쓰레기, 마른 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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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박은경의 특파원 칼럼

젖은 쓰레기, 마른 쓰레기

by 경향글로벌칼럼 2019. 7. 10.

1980년대 인기를 끌었던 홍콩 노래 ‘상하이탄’이 최근 상하이에서 ‘쓰레기 분리 송’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물티슈는 물기가 얼마나 있든 마른 쓰레기, 해바라기씨 껍질은 말라비틀어졌어도 젖은 쓰레기, 돼지가 먹을 수 있으면 무조건 젖은 쓰레기….”


가창자의 진지함이 가사 내용과 대비되면서 중국 소셜미디어에서 화제를 끌고 있다. 상하이탄이 쓰레기 분류 노래로 패러디된 이유는 상하이시가 지난 1일부터 역사상 가장 엄격한 ‘생활쓰레기 관리 조례’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 사는 대다수 한국 교민들은 인터넷 등 각종 통제에 미치도록 답답함을 느끼지만, 쓰레기에 관해선 ‘자유’를 느끼곤 한다. 정해진 요일에 쓰레기를 배출할 필요가 없고, 음식물과 재활용품을 따로 분리하지 않아도 된다. 대부분 아파트는 층마다 수거 통이 있어 쓰레기를 들고 건물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새 조례가 시행된 상하이를 시작으로 쓰레기 배출 풍경이 크게 바뀌게 됐다. 모든 생활쓰레기는 젖은 쓰레기, 마른 쓰레기, 재활용품, 유해 쓰레기 4가지로 분류해 배출해야 한다. 아무렇게나 버리면 개인은 최고 200위안(약 3만4000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가오카오’(중국 수능)보다 더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 분류 기준 때문에 ‘분리배출 애플리케이션’ ‘분리배출 대행업’ 같은 새로운 산업도 등장했다. 


14억명 가까운 인구 대국인 중국은 쓰레기 배출도 ‘대국’이다. 2001년 이후 도시 쓰레기 배출량이 빠르게 증가했다. 2017년 중국의 생활쓰레기양은 1억3470만t에서 2018년 2억1521만t으로 60% 가까이 늘었다. 배달음식 시장이 커지면서 일회용 포장 용기 사용이 급증했고, 온라인 상거래 발달로 택배상자가 증가한 것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쓰레기 분류 제도를 도입한 나라로 꼽힌다. 1965년 베이징 시내 주택 단지에서 분리배출을 실시해 세계에서 가장 먼저 쓰레기 분류 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2000년 들어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선전 등 8개 도시를 생활쓰레기 분류 수집 시범도시로 지정하고 본격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쓰레기 처리 시스템 미흡과 부족한 시민의식 등으로 20년 가까이 정착되지 못했다. 배출된 쓰레기는 수집, 운반 과정에서도 분리 처리돼야 하는데 시스템 미흡으로 완벽한 분리 처리가 이뤄지지 않은 지역도 많았다. 또 중국의 쓰레기 분류를 ‘쓰레기를 주워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拾荒人)들에게 의존한 측면도 있다. 8만2000명 정도로 추산되는 이들은 뒤섞여 버려진 쓰레기 속에서 팔 수 있는 재활용품을 알아서 수거했다.


최근 쓰레기양이 급증하고, 처리 능력이 한계에 다다르면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직접 칼을 빼들었다. 지난달 3일 관영매체들은 시 주석이 “쓰레기 분리배출은 자원 절약과 사회 문명 수준의 중요한 구현”이라고 지시했다며 일제히 보도했다. 


시행 일주일 남짓 된 상하이 쓰레기 분리배출의 효과는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음식배달 앱인 얼러머 집계 결과 상하이에서 지난 1일부터 나흘간 일회용 수저를 거부한 비중이 전달 대비 149% 늘었다. 


그동안 가장 큰 난제로 꼽혔던 시민의식도 개선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상하이에서는 ‘개방의 선진도시 상하이에서 먼저 앞장서자’ ‘나부터 시작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인들이 져서는 안되는 전쟁’이라는 말도 나온다. 쓰레기 분리배출은 이제 더 미룰 수 없는 숙제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듯하다. 수십년간 시도에만 그쳤던 쓰레기 분리배출이 대륙에 뿌리내릴 적기를 만난 듯하다. 이제는 더 미룰 수도 없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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