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목줄 사기극, 신종 ‘펑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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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박은경의 특파원 칼럼

개목줄 사기극, 신종 ‘펑츠’

by 경향글로벌칼럼 2019. 6. 26.

중국에 개를 대상으로 한 ‘펑츠(자해 공갈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풀어서 설명하면 개 물림 ‘할리우드 액션’ 사기극이랄까. 


지난달 간쑤성 란저우에서 일어난 사건이 대표적이다. 한 남성이 개를 산책시키고 있는 여성 견주를 따라가다가 견주가 한눈을 판 사이 개에게 달려들어 밀친다. 놀란 개가 짖으면서 날뛰는 틈을 타 개에게 물린 척하고 견주에게 치료비를 뜯어낸다. 사건 당사자이자 목격자인 개가 증언을 못하니 속수무책 당하기 일쑤다. 란저우뿐 아니라 각지에서 비슷한 피해 사례가 속출하자, 경찰은 범죄 예방을 위해 사기 수법을 자세히 알렸다.


그런데 중국 누리꾼들의 반응은 예상과 정반대였다. 되레 사기꾼 남성을 응원하고 나섰다. 대부분이 “이 ‘펑츠’는 지지한다” “악은 악으로 다스려야 한다”면서 ‘당해도 싸다’는 입장을 밝혔다. 개 목줄을 하지 않고 산책을 나온 견주가 백 번 잘못했다고 지적했다. 공갈 협박범보다 무개념 견주에게 더 분노했다.


중국에서 자해 공갈 사기를 일컫는 펑츠는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깨지는 도자기를 뜻한다. 일부 골동품 업자들이 금이 간, 깨지기 쉬운 도자기를 길가 자판에 세워놓고, 행인들이 실수로 건드리기를 기다렸다가 돈을 뜯어내는 수법에서 나왔다. 길에서 쓰러진 노인을 도와주려다 오히려 가해자로 몰리거나 고의로 차에 뛰어들어 다친 척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개 목줄을 하지 않은 견주를 겨냥한 펑츠는 수년 전부터 등장했다. 그러나 무개념 견주들에 대한 혐오와 공포가 올라가면서 범죄를 지지하는 이상 현상까지 나오고 있다.


수년 새 눈덩이 불어나듯 애견 인구가 늘어나면서 아파트에서 개 짖음이나 층간 소음은 물론, 배변물 방치, 개 물림 등 사고도 잇따랐다. 뉴스에서 다루지 않던 작은 사고까지 소셜미디어로 노출되면서 켜켜이 쌓여온 반려견 에티켓에 대한 불만이 응집돼 폭발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중국에는 약 6700만마리의 반려견이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개를 키우는 인구는 급격히 늘고 있지만 의식은 그만큼 따라가지 못했다. 중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개 사고가 많은 곳으로, 교통사고로 다치는 이들보다 개 때문에 다치는 사람이 14배 많다는 조사 결과까지 있다. 반려견 등록, 목줄 착용 등 규정은 있지만 일일이 감시하기도 힘들다.


항저우에서는 전국 최초로 지난해 11월부터 밤 7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 사이에만 반려견을 집 밖에 데리고 나가 산책시킬 수 있게 하는 강력한 통제에 나섰다. 그러나 일일이 단속이 어렵고 낮에 산책시킬 수 있게 해달라는 견주들의 항의가 거세지면서 난관에 부딪혔다. 결국 4월부터 낮에도 반려견을 산책시킬 수 있는 시범 지역 3곳을 운영하고 있지만 완전한 문제 해결은 어렵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법적 책임을 가리기도 어렵다. 60대 여성이 산책을 하다 목줄을 하지 않은 강아지가 달려들며 짖는 것에 놀라 넘어졌고, 800만원이 넘는 입원비가 들었다면서 손해배상 소송을 했다. 이를 두고 부주의냐 개 탓이냐를 두고 2년간 소송을 벌이다 ‘쌍방과실’로 결론이 났다.


법적으로 해결이 쉽지 않자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식으로 처단까지 나타났다. 결핵 치료에 쓰이는 약물이 개에게는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이용해 반려견들이 산책하는 공원에 일부러 뿌려놓는 사건도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산책하던 개가 햄 속에 박혀 있던 약물을 먹고 죽는 일이 이어진다. 무개념 견주도 문제지만 유독물질을 공공장소에 뿌리는 일은 더 심각한 범죄다.


늘어나는 개 때문에 사회 분쟁이 늘어나고 있지만 법규와 감시만으론 한계가 뚜렷하다. 결국 견주들의 의식 전환으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할 텐데, 과연 언제쯤 실현될 수 있을까?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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