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렬의 신한반도 비전]총·균·쇠, 북한 위기의 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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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조성렬의 신한반도 비전]총·균·쇠, 북한 위기의 출발점

by 경향글로벌칼럼 2020. 2. 4.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 창궐로 전 세계적으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전염병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신종 코로나를 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작년에 발생한 아프리카돼지열병에 이어 설상가상으로 후난성에서는 치사율이 높은 조류인플루엔자가 발병해 전염병의 확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진화생물학자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총·균·쇠>에서 인류의 운명을 바꾼 3대 요소 중 하나로 병균을 들고 있다. 역사적으로 장티푸스, 흑사병, 천연두, 독감과 같은 전염병이 고대에서 근세에 이르기까지 인류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치사율이 높은 전염병이 창궐하면 민심이 흉흉해져 체제불안이 커질 뿐 아니라 인구감소로 생산이 줄고 국력이 약해진다. 


이번 전염병사태에 북한당국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북한당국은 전염병 유입을 막기 위해 1월21일부터 중국여행객의 입국 금지, 북한 거주 내외국인의 중국여행 제한, 중국에서 들어온 내외국인의 한 달간 격리,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잠정 폐쇄, 1월31일엔 북·중 간 항공기, 국제열차 운행중단을 발표했다. 북한은 몇 년 전 사스나 메르스 사태가 발생했을 때도 국경을 차단하는 조치를 취했었다. 


북한당국이 전염병 유입에 극도로 민감한 것은 오랜 경제난으로 영양상태 악화와 의약품 부족으로 주민들의 면역력이 크게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최근년 들어 중국에서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가 유입된 데 이어 작년에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유입돼 대북 제재로 가뜩이나 어려운 북한경제와 주민생활에 커다란 짐이 되고 있다. 


그간 북한은 그런대로 전염병 위기에 잘 대처해 왔다. 하지만 북한의 위기는 전쟁(총), 경제(쇠)에서도 온다. 북한은 냉전해체 후 외부 군사위협에 대처한다는 구실로 핵무기를 개발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란에 대한 군사공격과 달리 북한에 쉽게 무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비핵화를 협상카드로 안전보장과 경제발전을 꾀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최근 장기성을 띤 정면돌파전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하지만 비핵화 없이 경제발전을 이루기 어려울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안전보장의 토대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경제난의 장기화는 김 위원장이 내건 ‘인민생활 향상과 경제강국 건설’의 목표달성을 어렵게 할 뿐 아니라, 북한주민들의 영양상태 악화와 면역력 저하로 전염병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유엔보고서는 작년도 북한의 실질 GDP 성장률이 1.8%라 밝혔지만, 최근 발표된 한국은행 북한경제 보고서는 유엔제재로 북한의 보유외화가 크게 감소해 물가·환율 불안정 위기를 경고했다. 


북한이 원하는 제도안전과 경제발전은 미국과의 관계정상화와 국제경제체제 편입 없이 자력갱생이나 옛 사회주의 대국과의 연대만으로 이룰 수 없다. 11월 미 대선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기존 셈법을 바꿀 가능성이 없다면, 북한은 남한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장기국면에 대처하는 게 합리적 대안이 될 것이다. 북·미 협상의 답보국면 속에서 남북대화에 대한 미국의 양해가 있었고 정부의 개별관광 추진도 그 연장선에서 제안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 측 이해와도 맞는다. 북한은 자력갱생을 통한 정면돌파전의 핵심으로 관광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관광이 제대로 되려면 각종 인프라가 깔려야 하고 그 출발점은 철도·도로가 될 것이다. 북한은 기존 철도·도로의 연결이 아니라 단번도약을 위해 고속철도·고속도로의 건설을 원한다. 따라서 2018년 12월의 착공식에서 더 나아가 고속철도 공동조사·설계작업부터 남북이 시작하면 된다.


작년 2월 북·미 정상회담의 노딜 이후 남북관계가 사실상 단절되어 있다. 하지만 이번 신종 코로나의 발생은 남북협력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시진핑 주석에게 위로 서한과 지원금을 보낸 것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북한에는 여전히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남아있고, 신종 코로나 확진환자가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 감염병에 대한 공동방역을 위해 남북 보건의료협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정부는 신종 코로나 검사시약, 방역물자뿐 아니라 아프리카돼지열병 치료제 제공 등 남북 긴급의료협력을 북한에 제안할 필요가 있다. 


신종 코로나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된 뒤에는 민간 차원의 교류·협력부터 재개하고 개별관광을 위한 남북당국자 대화를 적극 추진해야 할 것이다. 북한당국은 제재 국면하에서 새로운 정면돌파를 위해서도 더 이상 남측이 내미는 손을 뿌리쳐서는 안될 것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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