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빼앗긴 서점의 봄
본문 바로가기
=====지난 칼럼=====/박은경의 특파원 칼럼

코로나19에 빼앗긴 서점의 봄

by 경향글로벌칼럼 2020. 3. 17.

지난 9일 중국의 최대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가 특별한 인터넷 생방송을 했다. 제목은 ‘보위 독립서점’. 전국 각지에 있는 5개의 개성 있는 독립서점들이 참여했다. 과거 방공호를 개조해 만든 난징의 셴펑(先鋒)서점, 광저우의 첫 24시간 서점 1200북숍, 충칭의 징뎬(精典)서점, 리커창 총리도 방문했던 항저우의 샤오펑(曉風) 그리고 자싱의 유토피아(烏托邦)서점 창업자들이 직접 출연했다. 


창업자들은 이날 책을 소개하지 않았다. 대신 서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셴펑서점의 창업자는 서점이 한 달 넘게 문을 닫은 것은 20여년 만에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텅 빈 서점을 보면 마음이 찢어지고 괴롭다”고 했다. 셴펑은 영국 BBC방송이 뽑은 세계 아름다운 10대 서점 중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선정됐다. 


샤오펑서점 주인은 “2003년 사스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했다. 지난달 24일에 문을 다시 열었는데 그날 손님은 15명뿐이었다.


유토피아서점은 지난달 말 이미 폐점을 선언했다. 토머스 모어가 쓴 동명의 책에서 이름을 따온 이 서점은 “유토피아의 이념, 평등, 자유, 공유의 방식으로 하나의 생활 방식을 만들어 보겠다”며 4년 전 개업했다. 독립영화 크라우드펀딩, 독서회, 민중가요 행사 같은 활동을 열어 문화공간 역할을 했다. 온라인 쇼핑몰에 밀려 회원제 전환으로 돌파구를 마련하려던 차에 코로나19까지 만나 매출이 제로로 떨어졌다. 서점 주인은 “밥은 먹고 살아야 해 서점을 닫지만 지난 4년간 인정도, 즐거움도 얻었다”면서 “유일하게 잃은 것은 돈뿐”이라고 말했다. 


이날 방송에서는 각 서점에서 준비한 책 세트를 팔았다. 세트에 대한 별다른 설명은 없었지만 5000개 넘게 팔렸다. 매출액으로는 50만위안(약 8800만원)에 달한다. 고객들은 이 세트가 어떤 책으로 구성됐는지 미리 알 수 없다. 세트마다 구성도 다 다르다. 이를테면 ‘복불복 게임’ 같은 책 꾸러미다. 보지 않고 사는 세트라 이름도 ‘망대(盲袋)’로 붙였다.


요 며칠 새 소셜미디어에는 이 책 세트를 전달받고 열어보는 ‘언박싱’ 동영상이 올라오고 있다. 수준 높은 책을 추천해줘서 고맙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코로나19로 많은 업종들이 타격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종이책을 파는 서점의 타격이 상당하다. 대형 프랜차이즈 서점뿐 아니라 중소형 독립서점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지난달 중소형서점 연합회에서 1021곳의 오프라인 서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99%가 코로나19로 정상적 수입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대부분은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했다.


이날 독립서점들을 응원하기 위해 방송에 참여한 작가 겸 출판인 쉬즈위안(許知遠)은 코로나19 사태에 책의 소중함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그는 “서점은 도시에서 사람을 연결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서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삶을 이해하고, 사람을 이해하고, 책을 이해하려는 갈망이 더 커진다”고 했다. 코로나19가 산업지형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그러나 서점까지는 앗아가지 않았으면 한다. 책을 매개로 사람이 모이고 문화가 쌓이는 서점까지 없다면 세상이 얼마나 삭막할까.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