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모 워싱턴
진정한 핵 억지력은 핵탄두와 장거리 미사일의 조합이다. 좌우 한 짝씩 모두 갖춰져야 비로소 신을 수 있는 한 켤레의 신발이 되는 것과 같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국제 비확산체계에 손상을 주긴 하지만 크게 봐서 동북아시아의 지역 안보 문제다. 하지만 여기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능력이 보태지면 미국과 전 세계의 안보 문제가 된다. 미국이 북한의 핵활동보다 미사일 개발 움직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급 신형 미사일을 새로 선보이고 있다. I 출처:경향DB
지난 13일 북한이 은하 3호 발사에 실패하자 한국 언론은 “북한의 ICBM 개발은 아직 멀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불과 이틀 뒤 북한이 열병식 때 낯선 미사일을 끌고 나오자 이번에는 “북한이 미국 타격이 가능한 ICBM을 공개했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모두 국방부 관리와 정보당국의 말을 인용한 평가였다.
한 편의 슬픈 코미디 같은 장면이 한국에서 펼쳐지는 동안 정작 이 문제에 민감해야 할 미국은 침묵을 지켰다. 북한의 미사일 능력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이 은하 3호 발사에 성공했더라도 여기에 핵탄두를 실어 미국 본토까지 날리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안정적인 발사가 보장되어야 하고 탄두가 대기권 안으로 재진입할 때 마찰열을 견딜 수 있는 기술도 필요하다. 또 지금처럼 위성에 쉽게 포착되는 거대한 발사장에서 몇 개월 동안 발사준비를 해야 하는 ICBM은 선제 타격에 속수무책이어서 무기가 될 수 없다.
최근 관심도가 높아진 북한의 ‘이동식 미사일’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이동식 미사일 우려를 불러온 것은 지난 2010년 10월 처음 공개된 ‘무수단미사일’이다. 러시아에서 받은 것으로 알려진 잠수함 발사용 중거리 미사일 R-27을 개조한 것으로 미국 정보기관은 판단하고 있다. 이 미사일은 원래 650㎏의 탄두를 탑재했을 때 사거리가 2400㎞에 불과한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이다.
무수단미사일은 이번에 새로 공개한 미사일과 마찬가지로 시험발사를 하지 않았다. 원래 모델에서 사거리가 1000㎞ 이상 늘어나도록 개조한 미사일을 시험발사도 없이 실전배치하고 대량생산 체계를 갖춘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더구나 북한이 이동식 미사일을 만들려면 고체연료가 필요하다. 이동식 미사일은 선제타격을 피하기 위해 고체연료를 장착한 채 차량으로 이동하면서 빠른 시간에 발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이동해서 미사일을 세우고, 수시간 동안 액체연료를 주입한 뒤 발사하는 시스템으로는 안된다.
고체연료를 개발하고 이에 적합한 엔진과 미사일 본체를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려운 기술이다. 중국은 고체연료를 쓰는 이동식 미사일 개발에 20년 이상을 매달려 최근에야 완성했다. 국제사회의 제재로 기술교류와 부품조달이 차단된 북한이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난제다.
이 때문에 미국 정보 전문가와 무기 전문가들 중 상당수는 이번에 북한이 공개한 새로운 미사일은 물론 기존의 무수단미사일도 모형이거나 무기로서 가치를 부여할 수 없는 미완성으로 보고 있다. 북한이 중국·러시아에 이어 3번째로 핵탄두를 소형화하고 고체연료를 쓰는 사거리 1만㎞ 이상의 ICBM을 이동식으로 발사하는 시스템을 갖추려면 아직 시간이 있다는 것이 미국의 판단이다.
북한의 미사일 개발은 분명 위협적이고 우려할 일이다. 그대로 두면 언젠가는 완성할 수 있다. 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언론에 공개해 국민 불안을 높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냉정하고 신중한 자세로 북한의 미사일 개발을 저지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데 노력을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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