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항일과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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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항일과 투쟁

by 경향글로벌칼럼 2020. 8. 26.

제2차 상하이사변 막바지인 1937년 10월. 상하이의 ‘사행창고(四行倉庫)’는 항일 전투 최후의 보루였다. 4개 은행이 공동으로 세웠다는 뜻의 이 6층짜리 창고는 강을 사이에 두고 영국이 통치하는 국제조계지와 마주하고 있다.

 

국민당 군대인 국민혁명군 제88사단 524연대를 이끌던 셰진위안과 400여명의 소속 군인들은 4일간 일본군의 10여 차례의 무차별 공격을 몸으로 막아냈다. 장비와 병력 수로는 열세였지만, 몸에 폭탄을 설치하고 적군에게 뛰어드는 희생으로 사행창고를 지켜냈다. 당시 일본군 희생자는 200명이 넘었으나 중국 측 희생자는 10여명에 불과했다. 외부에는 일부러 실제보다 많은 “800명의 군인들이 지키고 있다”고 알린 데서 유래해 ‘800명의 용사들’로 불린다.

 

이 사행창고 전투를 담은 영화 <팔백(八佰)>이 중국 대륙을 달구고 있다. 개봉 나흘째인 24일 박스오피스 수입 10억위안(약 1718억원)을 돌파했다. 2500만명이 넘는 관객들이 봤다. 코로나19로 영화관 관람객 수를 상영관 좌석의 30% 이내로 제한한 악조건 속에서 거둔 흥행이다.

 

‘중화민족 만세’ 대사를 비롯해 애국심 고취 요소가 곳곳에 뿌려져 있다. 외부 적들에 맞서 싸우는 용사들을 내세운 애국주의, 이른바 ‘국뽕’ 영화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이한 점은 중국 공산당이 아닌, 국민당 군대가 주도한 전투를 소재로 했다는 점이다. 실제 이 영화는 국민당 미화 문제로 개봉되지 못할 뻔했다. 지난해 6월 상하이 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상영될 예정이었지만 전날 갑자기 취소됐다. 지난해 7월 개봉도 석연치 않은 이유로 취소됐다. 당시 영화사는 “각 분야와의 협의를 통한 결정”이라고만 했다. 영화 속 군인들이 현재 대만 국기인 청천백일기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던지는 등 국민당 미화 내용이 문제가 됐다는 말이 흘러 나왔다.

 

과거 중국 영화는 항일전쟁과 국공내전 당시 국민당 군대를 비겁하거나 악하게 묘사해왔다. 2005년 후진타오 공산당 총서기와 롄잔 국민당 주석의 첫 당 대 당 회담이 열린 후에야 비교적 중립적인 묘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시진핑 시대 들어서는 적극적으로 국민당의 항일 역사를 흡수하고 있다. 2017년부터는 아예 루거차오 사건을 기점으로 삼아 8년으로 규정했던 항일전쟁을 14년으로 수정한 교과서까지 도입했다. 항일전쟁에서 공산당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공산당 권위를 높이려는 의도다.

 

미국과의 대립이 심화되고,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과 코로나19 책임론을 둘러싸고 전 세계적으로 반중 정서가 번져 있다. 내부 결속과 충성이 필수적이다. 공산당의 역사 해석과 인식도 언제든 변할 수 있다.

 

사행창고 전투는 1975년 대만에서도 <팔백장사>라는 제목의 영화로 제작됐다. 1970년대는 대만의 외교적 암흑기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었던 대만은 중국의 압력으로 1971년 유엔에서 탈퇴했다. 다른 국제기구에서도 소외됐고, 주요 국가들과 줄줄이 단교했다. 당시 대만의 선택도 항일을 통한 ‘중화민국(대만 국호) 만세’였다. <영렬천추> <견교영 열전><팔백전사> 같은 항일전쟁 영화에서 잇달아 개봉하며 고립된 대만인들에게 준엄한 국제정세에 맞서 싸우라고 선동했던 것은 우연일까.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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