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카테고리의 글 목록 (10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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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108

축구선수가 세상을 놀라게 하는 방법 박지성 골. 우린 얼마나 자주 인터넷 검색어 1위의 자리에서 이 어휘를 목격하는지. 박지성의 골은, 천안함이 가라앉아도, 형님예산·쪽지예산으로 온 나라가 부글거려도, 그 어떤 정국에서도 단숨에 1위로 점프할 수 있는 검색어 1위 전문 어휘다. 잘하는 축구선수가 종종 골을 성공시키는 일은 조금도 놀랄 일이 아니다. 그의 골 소식은 우리를 놀라게 하기보다, 우리의 영웅이 건재하다는 안도감을 주는 역할에 가깝다. 그 작은 안도감, 그가 골을 넣고 기뻐하는 순간을 공유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은 키보드를 두드린다. 그가 맨유에서 골을 하나 넣고, 연봉협상에서 좀더 유리한 고지, CF시장에서 좀더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 해서, 내 인생에 털끝만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대충 알고 있지만 말이다. 박지성과 .. 2010. 12. 22.
가슴을 덥히는 한 끼의 식사 목수정 | 작가·프랑스 거주 파리의 한 레스토랑에서 친구와 함께 식사를 했다. 족히 3개월 전부터 여기에 꼭 가봐야 한다고, 열 번쯤 말하던 친구를 따라 드디어 입성한 그곳. 두 개의 창문은 붉은 벨벳으로 반쯤 닫혀 있고, 문을 열고 들어서면 역시, 문 높이의 붉은 벨벳 커튼을 밀고 들어서야 홀이 드러난다. 마치 기웃거리는 뜨내기 손님은 사양한다는 듯, 꽁꽁 숨어있는 식당을 들어서면, 15평 남짓한 작은 내부에 식탁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다. 직접 반죽해서 구운 따뜻한 빵. 재료를 짐작하기 힘든, 마술 같은 소스 밑에 바싹 구워진 생선요리. 노르망디에서 공수해 온 짭짤한 수제 버터. 식당의 소믈리에가 골라놓은 묵직한 2001년산 적포도주. 마지막, 커피 잔에 나란히 곁들여 나오는, 주방장이 만든 콩알만한 .. 2010. 12. 9.
사브리나와 사우디아라비아의 공주 23살 때, 중고차를 구입하려던 부모가 모자라는 돈 대신 건넨 후, 3년간 노예로 착취되다가 병원 앞에 버려진 사브리나의 이야기는 현실에선 차마 존재할 수 없는 잔혹동화처럼 들린다. 이 믿기 힘든 이야기는 프랑스라는 나라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에서 한층 더 자극적인 뉴스로 다가왔다. 왕을 단두대로 끌고 간 후 자유·평등·박애의 깃발을 휘날렸고, 지금도 시시때때로 우린 여전히 자유와 평등과 박애가 필요하다고 외치는 그곳에서. 14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한 인간을 노예로 부리며 파멸시켜 갔다는 사실은, 세상 곳곳에서 허물어져가는 인간성 파괴의 흔적과 잔인하면서도 나약한 인간의 단면을 보여준다. 라스폰트리에는 영화 에서 평범해 보이는 마을 사람들 전체가 한 여자를 서서히 노예로, 그리고 창녀로 만들어가는.. 2010. 11. 19.
그리하여 프랑스 청년들은 더 붉어졌다 미치도록 푸른 가을 하늘의 아름다움이 세상의 모든 미와 추를 압도하던 지난 주말, 루아르강변에 늘어선 고성들을 여행하면서, 그나마 15유로까지만 허용되던 기름을 차에 넣기 위해, 문 열린 주유소를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 종일 찾아다녀야 했다. 파업 중이던 정유공장 노동자들이 일터에 복귀했다는 실망(?)스러운 기사를 르피가로가 타전하던 것이 벌써 일주일 전. 그 보도가 맞다면, 프랑스 전역의 주유소는 정상 가동했어야 한다. 언론들은 파업국면이 완전히 해체된 것처럼 성급하게 기사를 타전했으나 그것은 정부의 희망사항을 받아 적은 것에 불과했다. 2주간의 방학에 들어간 학생들, 자녀들과 함께 휴가를 떠난 많은 시민들이 제자리에 복귀하는 이번 주말, 대규모 파업과 시위가 다시 시동을 건다. 그 사이 르 카나르(le.. 2010. 11. 5.
프랑스의 '혁명전야'- 파리는 지금 '계급투쟁' 중 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프랑스가 폭발 직전이다. 연초부터 줄기차게 진행돼 왔던 총파업과 집회가 9월 이후, 7번째. 이 질긴 파업의 공식 이유는 연금개혁 반대지만, 한발자국 다가가서 보면 지금 프랑스는 신자유주의가 비틀어 놓고, 사르코지가 사정없이 밟아주는 반인간적인 사회시스템에 시민들이 온몸으로 저항하고 있는 중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민영화된 프랑스 텔레콤 직원의 연쇄자살 사태로 대변되는, ‘잔혹한 세상’을 이제 모두가 온몸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상원에서의 표결 결과와 무관하게 파업을 확대하겠다고 천명한 노조연합의 발표가 상황의 핵을 집어준다. Protestors take the street during the demonstration in Paris,France, Tuesday, Oct.12, .. 2010. 10. 24.
검열은 존재를 잠식한다 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목요일자 리베라시옹의 1면은 소년과 소녀가 벗은 몸으로 사랑을 나누는 사진으로 덮여있다. 파리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미국의 사진작가 래리 클라크의 사진전에 파리시가 18세 미만 입장금지 조치를 취한 데 대한 리베라시옹의 격앙된 고발이었다. 3면에 걸쳐, “다시 중세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은” 이 당찮은 검열에 대해 리베라시옹의 분노는 차고 넘쳤다. 68혁명으로, 프랑스사회는 ‘금지를 금지하는’ 데 일찍이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데 성적 터부에 대한 격렬한 저항의 상징같던 동성애자 시장 들라노에가 청소년들의 성애를 담은 사진에 대한 검열의 빗장을 내걸었다는 사실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래리 클라크의 사진들이 담고 있는 것은 바로 그들이 금지시키는 대상, 10대들이다. 그의 유명.. 2010. 10. 8.
브루니의 사생활 VS 부자들의 대통령 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2주 전, 을 파헤치는 책의 출간 소식이 요란하게 외신을 탔다. 집시들을 추방한 프랑스가 유럽의회에 의해 제소되고 거친 비난의 소리들이 프랑스를 향해 쏟아지던 바로 그 순간에. 우리나라에서 정치적으로 난감한 일들이 발생하면, 때마침 연예인 커플들이 이혼을 하거나 결혼을 하듯. 엘리제궁이 이 책의 출간을 방해하려다 실패하였다는 소문마저, 실은 출판사와 엘리제궁이 짜고 치는 장난으로 보일 만큼, 상황은 매우 절묘했다. 사실 이 책의 등장이 사르코지에게 해가 될 것은 거의 없다. 카를라 브루니의 역할은 등장 초부터 그러했다. 정치적 갈등으로부터 시선을 끝없이 분산시키는, 대통령 옆을 공식적으로 차지한 화려한 바비인형. 연애와 정치가 뒤섞일 때, 사람들의 호기심은 최대치로 치솟는 것을 .. 2010. 9. 24.
프렌치 패러독스 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한국과 프랑스는 먼 나라다. 양국이 서로의 뉴스를 전할 때 등장하는 뉴스들은 상대국 내에서의 중요도가 아니라 자극성의 정도에 따라 걸러진다. 한국에서 근 1년간 가장 비중있게 다뤄진 프랑스 관련 뉴스는 아트사커의 몰락이었다. 남아공월드컵 최대의 이변으로 꼽혔던 프랑스팀이 부진에 이어 졸렬한 내분으로 내달릴 때, 한국 신문들은 이를 1면에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프랑스 언론이 좋아하는 한국은 남한보다는 북한이다. 남쪽보다는 북쪽에서 자극적이고 위험도 수위가 높게 관측되는 뉴스들이 더 자주 생산되기 때문이다. 최근 가장 강도 높게 다뤄진 남한발 뉴스가 있다면 천안함 사태, 그리고 컴퓨터 게임을 하다가 갓난아이를 죽도록 방치한 부부이야기 정도다. 양국이 그다지 관심없어 하는 공통된 뉴스.. 2010. 9. 10.
이창동의 ‘시’ 꽃잎처럼 떠다니는 시체가 일깨우는 것 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이창동 감독의 영화 가 지난 수요일 프랑스 전역에서 개봉되었다. 일간 르몽드는 전면에 걸쳐 에 대한 평과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일간 리베라시옹, 르 피가로도 뜨거운 찬사를 곁들이며 칸영화제 기간 동안 열렬한 호응을 받은 이 영화에 대한 기대와 흥분을 숨기지 않았다. “영화에는 마치 끓고 있는 수프와 같이 놀라운 한국 사회의 에너지가 넘친다.” 피가로가 에 대해 평한 것처럼, 세계영화계가 한국 영화에 거는 기대 속에는 쓰라리고 거칠면서도 그런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도전적 힘에 대한 끈끈한 응시가 들어있다. 이창동은 이러한 세계영화계의 기대를 한 번도 저버리지 않는 저력있는 영화인임에 분명하다. 르몽드는 이창동과의 인터뷰 기사의 제목을 ‘한국에선 0점 받은 ’로 뽑았다. 칸영화.. 2010. 8.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