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카테고리의 글 목록 (11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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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108

집시를 잡아들이는 잔인한 8월 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8월에도 당신 곁에 있어줄 가장 충실한 파리지앵.” ‘파리지앵’이라는 일간지가 8월에 내세우는 광고 카피다. 8월 파리에는 카페에서 같이 수다를 떨어줄 이웃들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빵집도, 공연장도 문을 닫고 대입 수험생도, 공무원도, 심지어는 방송사도 논다. 재방송으로 뒤범벅된 따분한 TV를 감수해야 하는 게 프랑스의 8월이다. 법정유급휴가가 5주인 데다, 전 세계에서 휴가 활용도가 가장 높은(89%)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서 휴식할 권리를 무시했다가는 큰코다친다. 한번은 직원과 약속을 잡고 은행에 갔는데 10분 늦었다. 다행히 내 앞엔 아무도 없었다. 시간은 오전 11시40분. 당연히 상담을 할 수 있을 줄 알고 직원 앞에 앉았는데 “미안하지만, 당신은 늦게 왔고, .. 2010. 8. 13.
누가 누구의 부르카를 벗겨내는가 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부르카 벗겨내기가 유럽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벨기에 의회가 지난 4월 공공장소에서 부르카 착용금지법을 통과시킨 데 이어, 프랑스 하원이 이달 같은 법안을 통과시켰고, 스페인에서도 조만간 통과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부르카는 이슬람 여성의 전통의상 가운데 하나로 눈을 제외한 몸 전체를 검은색으로 가리는 옷이다. 탈레반 시절의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부르카를 착용하지 않은 여성을 즉각 구금, 체포할 수 있도록 했고, 실제 부르카를 착용하지 않고 방송에 등장한 여성앵커가 남성들에게 살해되는 사건도 있어, 부르카는 여성탄압의 상징이 되어왔다. 남성들은 누드로 도배된 도색잡지를 보건 말건, 여성의 신체는 오직 그 남편만 볼 수 있다는 ‘기도 안 차는’ 부르카 착용의 논리가 이 전신 베일을 .. 2010. 7. 30.
대통령은 정말 잘 뽑고 볼 일이다 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난 소중하니까.’ 10년 전쯤, 지겹도록 들었던 저 광고의 주인공, 로레알사가 프랑스를 스캔들 정국으로 몰아넣는 중이다. 어지간한 남의 인생살이엔 콧방귀도 안 뀌는 이 동네 사람들도 어쩔 수 없이 이 집안 얘기를 속속들이 알게 된 연유는 재벌가에서 벌어진 그 흔한 재산 소송의 귀퉁이에서 사르코지 대통령에게로 흘러간 불법 정치자금의 꼬리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87세의 릴리안 베탕쿠르는 로레알사 창업주의 딸로, 로레알사 주식의 31%를 점유하고 있는 프랑스 제1의 거부다. 이 여인의 주변을 40여년 전부터 맴도는 사람이 있었으니, 소위 다큐전문 사진작가 바니에란 자다. 꾸준히 베탕쿠르가 주변을 맴돌던 그는, 20년 뒤 베탕쿠르 가족의 절친이 되기에 이른다. 귀도 성치 않고, 심신 .. 2010. 7. 16.
르몽드와 새주인 베르제 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팔려간 르몽드지의 새 주인 셋 가운데, 단연 눈길을 끄는 사람은 피에르 베르제다. 1944년 창간 이래,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정론지로서의 모양새는 지켜왔으나, 초심을 저버린 지 오래인 르몽드의 쓸쓸한 운명을 애도해줄 아량까지는 없다. 5년 전 파리오페라극장에서, 공연을 관람하러 온 이브 생 로랑과 그의 연인 베르제를 보았고, 두 사람의 50년 된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접했다. 1962년, 그는 연인 이브 생 로랑을 설득하여 이브생로랑사를 함께 설립하고, 그들의 신화를 만들어간다. 20대 초반부터 카뮈, 사르트르, 콕토, 앙드레 부르통 등 당대의 지성인, 예술가들과 교류하던 그는 일찌감치 예술과 좌파의 성향을 뚜렷이 가슴에 새겼다. 이브생로랑사의 직원들은 매년 프랑스공.. 2010. 7. 2.
함께 살아가기 vs 학생이 되기 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나의 5살된 딸아이는 유치원에 다닌다. 내용상으론 유치원이지만, 공식적으로는 초등학교 입학 전에 다니는 3년 과정의 학교다. 학기말이 가까워지면서 담임선생님이 학업평가서를 집으로 보내오셨다. 최종 평가를 하기 전에 학부모가 먼저 동의하는지 살피는 과정이다. 11가지의 평가항목 가운데, 첫 항목은 ‘학생이 되기’였다. 공동생활의 규칙을 존중하는지, 관심을 한곳에 집중하는지, 선생님의 지시를 이해하는지 등 아이들이 공동생활의 첫걸음인 학교라는 사회에 잘 적응하는지를 살피는 항목이다. 그 외에 시간, 공간, 수량, 형태, 환경에 대한 개념, 언어구사 능력 여부, 마지막 두 항목이 ‘몸으로 표현하기’ ‘인식하고, 느끼고, 상상하고, 창조하기’였다. 각 항목은 점수로 평가되지는 않고, 아.. 2010. 6. 18.
진화하는 선거방식이 선거혁명 낳는다 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이런 잔인한 카피를 내세워 광고를 했던 기업이 있다. 이 문구는 어느새 한국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슬로건이 되어버렸다. 특히나 선거에서,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아무리 박빙의 승부를 펼쳤더라도 결국 1등을 한 사람이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뜻대로 정책을 집행한다. 그리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1등 고지로 달려가기가 선거레이스에서 펼쳐진다. 한명숙 후보를 향한 뻔뻔한 검찰의 표적수사도, 노회찬 후보가 참여하는 방송토론에 참석을 거부한 오세훈 후보의 행각도 조소를 사는 행위였으나, 결국 이러한 일련의 전략들이 십시일반의 효과를 거두어, 그들은 최후의 미소를 지었다. 이번 선거를 통해 정부 여당의 실정에 대한 국민의 메시지는 쩌렁쩌렁 울.. 2010. 6. 4.
학교를 좋아하니? 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프랑스 아이들이 학교성적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가중되고 있다는 기사가 파리지앵지에 실렸다. 고국에서 늘 보던 반가운(?) 표제가 아닌가. 프랑스도 한국화 되어가나 싶어 들여다보았다. 기사에 따르면, ‘52%의 학부모들은 자녀들 학교성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생각보다 높은 수치다. 다들 느긋해 보여도 속으론 걱정들 하는구나 싶었다. ‘69%의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학교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 정도면 양호한데, 여기서 더 뭘 바라나. ‘백만명의 학생(전체 학생의 약 7%)들이 학교수업 외에 연평균 40시간의 보충수업을 받는다.’ 이 대목에서 프랑스인들은 걱정을 했을지 모르나 나는 박장대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 40시간? 아무리 몇년.. 2010. 5. 14.
‘대지의 여신’을 위로할 시간이 필요하다 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지난 화요일, 햇빛 가득하던 파리 시내에 요란한 자동차들의 클랙슨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나가보니, 양쪽 차선을 완전히 점거한 대형 트랙터들이 꼬리를 물고 긴 행진을 하고 있었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에 항의하는 프랑스 전역의 농민들이 1500대의 트랙터를 타고 시위를 하는 중이었다. 대낮에 시가지에 진입한 탱크처럼 긴 트랙터 대열의 시각적 효과는 위협적이었다. “사르코지, 너의 정책은 빵점이야!” “브루니(사르코지 대통령 부인), 우린 사랑과 물만 먹고 살 순 없어.” “우리 농업을 지키는 데는 대가가 필요하다.” 슬로건들은 단호했지만, 시위는 유쾌했다. 시민들은 그들을 향해 박수치거나, 미소를 보내며, 그들의 싸움을 지지했다. 전통적 농업국인 프랑스, 식량자급이 가능했던 .. 2010. 4. 30.
이미지가 아닌 정책철학을! 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베르트랑 들라노에 파리 시장은 지난 14일, 세느강변 도로를 축소하여 녹지공간을 확보하는 강변정비사업계획을 내놓았다. 2012년까지 세느강변 일부 도로를 차단, 축소하여 녹지와 휴식, 문화공간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신속한 소통이 생명인 대도시에서 적잖은 반발이 예상되지만, 쾌적한 도시 만들기에 방점을 찍은 그의 일관된 정책철학은 이 계획을 긍정적으로 읽게 한다. 선거 전, 동성애자임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으로 유명한 들라노에 시장은 2003년 파리 시장에 당선, 2008년 재선된 후 지금까지 친환경도시 만들기에 노력을 집중해왔다. 2020년까지 파리시는 자동차 수를 40%, 온실가스 배출량을 60%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녹색’은 지구촌을 휩쓰는 최상의 정치슬로건이지만, 그.. 2010. 4.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