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의 눈]‘일본회의’라는 망령
본문 바로가기
경향 국제칼럼

[경향의 눈]‘일본회의’라는 망령

by 경향글로벌칼럼 2019. 8. 22.

일본의 경제침략에 대응하는 ‘진실의 연대’가 작동하고 있다. 일본의 노동·시민사회단체, 법조계, 양심적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노동자에 대한 한국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고 수탈적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와 반성, 배상이 이뤄져야 한·일관계가 정상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는 최근 펴낸 <탈대일본주의>에서 “일본은 사죄를 통해 대국주의의 헛된 욕망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한국의 시민사회와 연대해 맞선다면 ‘일본의 도발’을 무위로 돌릴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아베의 일본’은 단단하다. 그 구심점에 일본회의가 있다.


일본회의는 ‘일본을 지키는 모임’과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가 1997년 통합·결성한 극우단체다. 도쿄 등 240여개 본·지부에 정·재·학·종교계 주요 인사를 포함해 수만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일본회의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영국 ‘가디언’ 등 해외언론이 먼저 알렸고, 아사히신문이 2016년 연재를 시작하면서 ‘대중의 의식’ 안으로 진입했다. 이후 일본회의를 파헤친 출판이 이어졌다. 국내에선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 조국 전 민정수석이 <일본회의의 정체>를 들고 참석하면서 관심은 점증됐다. 이 책은 교도통신 서울특파원을 지낸 아오키 오사무가 일본회의 소속 인사들과 양심적 역사가 등을 인터뷰한 기록을 정리한 고발서다.


아오키는 일본회의의 정신적 지주를 신도(神道)로 파악하면서 사상의 원류는 ‘생장의 집’으로 분석했다. 신도는 8만여 신사를 거느린 일본 고유의 민속신앙이다. 아오키는 메이지유신 이후 태평양전쟁 패전 직전까지 80년 가까이 국가의 비호를 받으며 성장한 ‘국가 신도’에 주목했다. 일왕 숭배의 국가신도는 제국주의 전쟁의 ‘구동장치’였으나 전후 미국에 의해 ‘국교’로서의 지위를 잃었다. 일본회의는 이의 부활을 꿈꾼다. 생장의 집은 신흥종교단체다. 교조 다니구치 마사하루는 <황도령학강화>에서 “날 때부터 신이 지도자로 정한 일본 황실이 세계를 통일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다니구치의 ‘자민족 중심 정치사상’은 전후 일본 우익에 계승됐다.


일본회의의 기본운동방침은 ‘황실 존숭(尊崇)’ ‘보통의 군대’ ‘역사 교과서 수정’ ‘헌법 개정’으로 집약된다. 그런 일본회의에 우익 정치인들이 집결해 있다. 일본회의 소속 국회의원은 전체 참·중의원의 40%가 넘는 280여명 이라고 한다. 지방의원도 2000명에 가깝다. 이들 대부분은 신사본청 산하 신도정치연맹(신정련) 소속이다. 4차 아베 내각 각료 19명 전원이 신정련, 그중 15명은 일본회의 소속이라고 한다. 아베 총리, 아소 다로 부총리,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이와야 다케시 방위상, 야마모토 준조 국가공안위원장, 시모무라 하쿠분 자민당 헌법개정추진본부장, 모리 에이스케 중의원 헌법심사회장, 에토 세이치 총리 보좌관, 이나다 도모미 총재특별보좌역 등 일본의 내각과 입법기관의 주요 자리에 일본회의 멤버들이 포진해 있다. 이들이 한국에 대한 경제침략을 주도하고, “한국은 매춘하러 가던 곳” “메이지유신의 정신을 되찾아야 한다”는 망언을 서슴지 않는 것이다.


일본회의는 제국주의 일본으로의 회귀작업을 치밀하게 진행해왔다. 기원절(건국기념일) 부활과 원호법제화(일왕 원호 사용을 법으로 규정)를 이뤄냈고, 일본 신편사 편찬·(식민 지배) 사죄 결의 반대·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지지 운동 등을 펼쳤다. 애국적 역사교과서 편찬과 교육기본법 개정에도 성공했다. 이들은 1970년대 ‘전학공투회의’로 대표되는 진보 좌파와 대항해 승리했고, 이후 중앙·지방 정치계와 학계·재계·문화계를 장악하면서 차근차근 ‘전쟁 전의 일본’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려되는 것은 일본회의의 이런 배타적 주의·주장, 불관용이 일본 국민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는 점이다. 아오키는 “문제는 아베 정권이나 일본회의에 그치지 않는다. 일본사회 전체가 병에 걸렸다”고 단언했다. 도쿄대 명예교수 시마조노 스스무는 “매우 위험하다. (일본회의가) 정교 분리를 짓밟고 있어서 이는 전쟁 전으로의 회귀로밖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일본회의의 최종 목적은 ‘전쟁을 포기하고, 이를 위한 군대는 보유할 수 없으며 교전권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헌법 9조의 삭제다. 전쟁이 가능한 나라를 만들고, 일왕 숭배를 법으로 못 박으려는 것이다. 아베의 일본이 원하는 것을 얻으면 동아시아의 맹주로의 회귀를 꿈꿀 것이다. 방관할 수 없고 방관해서도 안된다. ‘진실의 연대’는 더욱 단단해져야 하고, 논의의 장을 전 지구적으로 넓혀야 한다. 경제침략을 넘어 제국주의 부활을 꿈꾸는 ‘아베의 일본’이 도발을 멈출 때까지.


<김종훈 논설위원>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