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2년 8월 멕시코의 카를로스 살리나스 대통령과 에르네스토 세디요 교육부 장관은 새로운 역사교과서의 발간을 공표했다. 하지만 1975년 이후 오랜만에 간행된 4~6학년용 필수 과목의 교과서는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의회 내 논쟁은 물론 언론 매체, 교원 노조, 가톨릭교회, 학부모 단체, 기업인 연합, 군, 전직 대통령 등의 관심과 반발이 이어졌다. 한편에서는 공인된 역사 해석을 거스른다는 비판이 쏟아졌고, 다른 한편에선 새로운 연구 동향을 반영한 “객관적 역사로 옛 교과서의 편협하고 편향된 이분법적 해석을 대체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살리나스와 세디요는 교과서 저자들을 섭외했을 뿐 아니라 이들이 작성한 초고를 읽고 심지어 교과서 표지에 넣을 이미지 자료를 고르는 등 교과서 발간 과정에 적극 개입했다. 결국 1992년 교과서는 정부 고위층의 의중이 담긴 역사 다시 쓰기의 일례가 되었다.
새로운 교과서의 내용 구성과 관점의 수정은 1980년대 초 이래 멕시코 정부의 성격 변화를 대변한 것이었다. 그것은 1910년 멕시코 혁명에 뿌리를 둔 정치적 전통과 민족주의, 수입대체산업화 정책, 사회개혁의 옹호에서 벗어나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수용, 농업개혁의 공식적 포기 등 새로운 경향에 집중했다. 1975년과 1992년의 교과서는 혁명 전 개발독재 시기, 혁명과 농민운동, 가톨릭교회, 미국 등 멕시코 현대사의 주요 계기와 주제에 대한 대조적인 해석과 강조점의 변화를 드러냈다. 1992년 교과서는 1975년 교과서에 비해 외국인 투자에 대한 비판을 삼갔고 지배계급, 노동계급, 특권층, 대지주 등 계급 구조와 관련 있는 용어를 투자자, 기업가, 새로운 사회 계급 등으로 바꿨다.
멕시코를 공식 방문중 살리나스 대통령과 악수하는 노태우 대통령_경향DB
사실 교과서 논쟁은 살리나스 정부의 정책과 성격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의 대용물이었다. 반발에 직면한 살리나스와 세디요는 전임자들과 달리 교과서 논쟁에서 물러섰고 교육부도 한발 물러나 1993년 1월에 역사를 비롯한 일부 과목의 교과서 발간에 경쟁 체제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미국의 사회학자 제임스 로웬은 1995년에 쓴 책에 ‘선생님이 전해준 거짓말’이라는 도발적인 제목을 붙였다. 미국의 고등학교와 대학교 교양 과목에서 많이 쓰는 역사교과서와 필독 교재들의 문제점을 검토한 로웬은 역사를 이렇게 가르치는 까닭이 무엇이고, 누구를 만족시키려는 것인지 묻는다. 로웬에 따르면, 국정 교과서 체제와 거리가 먼 미국에서도 절반이 넘는 주에 교과서 채택위원회가 있기 때문에 안정 상태의 유지에 도움이 되는 교과서가 선정될 확률이 높고, 따라서 교과서를 중심으로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은 실제 역사의 다양한 흐름에 대해 우둔해질 수 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우둔해지는 역설적인 결과에 더해 획일적이고 지루한 역사교과서는 학생들의 흥미를 떨어뜨리곤 한다.
하물며 국정 교과서는 어떤 결과를 빚을까?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국민들의 경험과 기억에 대한 공식적이고 유효한 서술을 독점하고 특정한 방향의 일체감을 강화하려는 목표를 지닐 수밖에 없다. 역사 공부의 참뜻이 사실의 집적과 선별을 통해 어떤 민족이나 국가의 위대성을 일깨우는 데 있지 않고 돌아보게 만드는 것, 즉 비판적 자기성찰의 능력을 지니도록 돕는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국정화 회귀와 교육의 획일화는 부질없는 시도일 뿐이다. 한국에서도 국정 역사교과서는 해방이나 정부 수립 당시부터 기본 정책으로 도입된 게 아니라 1973년 6월부터 1997년까지 특정 시기의 산물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또 <억눌린 자의 교육학>(Pedagogy of the Oppressed)으로 잘 알려진 브라질의 교육가 파울루 프레이리가 간파한 대로, “지배층이 사회적 불평등을 비판적으로 자각할 수 있는 교육 방식을 마련할 것이라는 기대는 순진한 발상”임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박구병 | 아주대 교수
'경향 국제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그인]우리와 그들 사이 (0) | 2015.09.10 |
---|---|
[기고]글을 읽으면 더 큰 세상이 ‘활짝’ (0) | 2015.09.06 |
[여적]다모클레스의 칼 (0) | 2015.09.04 |
[사설]인류의 양심을 깨우는 세살배기 난민 아일란 쿠르디 (0) | 2015.09.04 |
[기고]유럽연합, 통합된 난민 정책은 가능한가 (0) | 2015.09.0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