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디찬 바다에서 목숨을 잃고 해안가에 떠밀려온 세살배기 시리아 꼬마 난민의 사진 한 장이 지구촌을 울리고 있다. 지난 2일 아침 터키의 유명 휴양지 보드룸 해변에서 모래에 얼굴을 묻은 채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아일란 쿠르디와 그 가족은 시리아 난민의 참상을 생생히 고발하고 있다. 이슬람국가(IS)의 위협을 피해 시리아 북부에서 터키로 넘어간 이 가족은 다시 그리스로 건너가기 위해 작은 보트에 몸을 실은 채 캄캄한 바다를 건너고 있었다. 하지만 밀입국 브로커에게 부탁해 3번의 시도 끝에 어렵사리 잡은 배편은 이들 가족을 비극으로 몰아갔다. 거센 풍랑이 배를 덮쳤고, 쿠르디 아빠 압둘라는 물에 빠진 두 아들과 아내를 팔에 안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그는 처자식의 숨이 멎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거친 물살에 죽은 아내와 아이마저 놓쳐버렸다.
홀로 살아남은 그는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캐나다에 사는 아이의 고모 티마는 언론 인터뷰에서 “압둘라가 무덤에 아이들이 좋아하던 바나나를 놓아주겠다고 했다”며 “제발 전쟁을 멈추고 난민들을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이 가족은 올해 초 캐나다 이민을 신청했다가 거부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가족의 참극은 수백만명에 달하는 시리아 난민가족의 한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인권단체들에 따르면 2011년부터 5년째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 내전으로 어린이를 포함해 25만명이 숨졌다. 하루 7명꼴로 모두 1만명이 넘는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난민은 시리아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중동에서 리비아·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등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난민이 줄을 잇고 있다. 지중해를 건너다 목숨을 잃은 난민은 올해 들어서만 2600여명에 이른다. 지난해 28만명에 이어 올해 들어 유럽으로 유입된 난민만 34만명이다. 이들은 서유럽으로 밀입국하다 돈벌이 대상으로 전락해 떼죽음당하기 일쑤다.
세살배기 시리아 난민 아일란 쿠르디(왼쪽) 사진과 기사가 이날 브라질의 일간 신문들 1면 머리를 장식하고 있다._AP연합뉴스
난민의 가장 큰 원인은 정정 불안과 내전이다. 난민이 급속도로 늘고 있는 시리아의 경우 정부군과 반군 간 내전에 IS까지 가세하면서 잔혹행위가 끊이지 않자 시민들이 도리없이 집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난민 발생의 책임은 당사국 정부에 있다. 하지만 독재정부 전복을 위해 시리아 정부를 상대로 시작한 전쟁을 종결짓지 못하는 서방국가들에도 일단의 책임이 있다. 그런데도 난민 수용에는 소극적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시리아 내전이 시작되자 미국에 1만7000명의 난민을 받으라고 요청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이 지금까지 수용한 난민은 1800명에 불과하다. 난민 보호보다 안보가 우선이라며 난민 심사를 까다롭게 했기 때문이다. 독일을 제외한 유럽국가들의 난민 외면은 더욱 심각하다. 독일이 올해 80만~100만명의 난민을 수용하겠다고 나선 반면 영국이 올해 들어 받아들인 시리아 난민은 고작 216명이다. 이 국가들은 저마다 자국 사정을 앞세워 난민 수용을 거부해왔다.
세 살 아기의 죽음이 던진 충격은 난민 구호가 유럽만의 문제가 아님을 말해준다. 그럼에도 미국은 난민 정책을 바꿀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다행히 그제 독일과 프랑스는 유럽연합(EU) 회원국이 난민을 의무적으로 분산 수용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전쟁에 책임이 있는 유럽 등 서방국가들은 더 적극적으로 공동행동에 나서야 한다. IS 격멸, 중동지역 안정화 등 난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아일란 쿠르디. 세계인의 양심에 채찍질을 한 이 이름을 우리는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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