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명 이상의 생명을 앗아간 니스의 트럭 ‘테러’로 프랑스가 충격에 빠졌다. 이 사건이 이슬람 극단주의와 직접 연결된 테러인지는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과 장소의 상징성을 감안하면 이 학살 행위가 프랑스 공화국 정신에 대한 도전임은 틀림없다. 매년 7월14일 혁명 기념일은 우리의 광복절이나 제헌절처럼 정부만의 행사가 아니다. 도시마다 온 시민이 동참해 춤추며 혁명을 기념하는 축제다. 니스에서 불꽃놀이 행사가 끝나자마자 광란의 트럭 질주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공격의 대상이 혁명 정신인 자유·평등·박애였음을 잘 보여준다. 또한 지중해 ‘천사의 만’에 자리 잡은 니스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휴양도시로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즐겨 찾는 명소다.
7월 15일(현지시간) 프랑스 경찰이 전날 니스 해변에 모인 인파를 향해 돌진한 대형 트럭을 감식하고 있다. 앞유리창은 범인과 경찰 간 벌어진 총격으로 벌집이 됐고 라디에이터그릴은 충격으로 떨어져 나갔다. 니스 _ AP연합뉴스
지난해 샤를리 에브도와 파리 테러에 이어 니스에서 다시 대량 학살이 일어나자 프랑스식의 세속주의와 이슬람은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유행이다. 프랑스 사회가 이민자 통합에 실패했다는 설명도 빈번하다. 프랑스인들조차 이제 테러의 위협이 일상적 삶의 한 부분이 되었다는 사실을 수긍하는 듯하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슬픔과 망연자실의 혼란을 딛고 일어서려는 결연함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다. 2016년 7월 니스 트럭 사건은 프랑스와 이슬람 극단주의의 대결이 장기전으로 돌입했음을 알리는 경종이기 때문이다.
우선 극단주의의 프랑스 사회에 대한 반복적 공격은 분열과 굴복보다는 결속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샤를리 사건은 언론의 자유에 대한 공격이었고, 지난해 11월 주말 테러는 치밀하게 계획한 시민 무차별 학살이었다. 따라서 야만적이지만 무서웠다. 하지만 이번 니스 사건은 축제를 즐기는 시민에 대한 미친 폭력의 민낯일 뿐이다. 이슬람 극단주의는 이런 사건을 통해 프랑스 사회를 내전의 상황으로 모는 것이 목적이다. 프랑스 시민들이 무슬림을 박해하고 핍박함으로써 극단주의 전사를 양산하겠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프랑스인들은 적의 목적을 잘 알기 때문에 오히려 박애와 톨레랑스(관용)라는 전통적 가치를 중심으로 뭉칠 수 있다.
7월 15일 프랑스 니스 해변가 도로에 전날 ‘트럭 테러’로 숨진 희생자를 애도하는 꽃들이 놓여 있다. 니스 _ AP연합뉴스
최근 브렉시트 사태만 보더라도 위기의 상황에서 내부 결속력이 강화되는 여론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영국민의 유럽연합(EU) 탈퇴 결정 이후, 유럽인들은 EU의 소중함을 다시 느끼는 중이다. 한 나라처럼 자유롭게 여행하고 일하고 사회보장 혜택을 누리는 유럽의 소중함 말이다. EU 탈퇴란 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브렉시트 이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폴란드 등 6개국에서 실시한 조사에서 유럽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늘어났고 극우의 민족주의 성향은 오히려 약화되었다.
니스 사건은 또 2016년 유로 축구대회에서 프랑스가 결승에 진출하는 쾌거 직후 터졌다. 프랑스 국가대표 축구팀은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과거 1998년 월드컵과 2000년 유로 우승 등의 영광을 재현했다. 특히 백인과 아랍인, 흑인으로 다양하게 구성된 다문화 대표팀의 성공은 프랑스 사회의 화합 능력에 대한 자부심을 고취시켰다. 예를 들어 이번 대회가 낳은 새로운 스타 앙투안 그리에즈만은 독일계 친가와 포르투갈계 외가를 가졌다. 드미트리 파예트는 인도양 레위니옹, 사뮈엘 움티티는 아프리카 카메룬, 킹슬레 코망은 대서양 서인도제도 출신이다. 축구를 통해 프랑스는 유럽과 세계의 다양성을 하나로 묶어 꿈을 이루는 실험에 성공했다는 말이다.
왕의 폭정과 사회적 불의에 저항하여 혁명을 일으킨 전통, 인종차별의 나치즘에 굴하지 않은 레지스탕스의 정신은 쉽사리 이슬람 극단주의나 테러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극우 민족전선은 국상(國喪)을 당한 프랑스를 상대로 이슬람과 이민자에 대한 배타적 감정을 자극할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는 극단적 이슬람과 극우 민족주의가 부르는 증오와 분열의 유혹을 떨쳐내고 다양성을 공동체로 엮어내는 공화주의 정신을 유지해 나가리라 믿는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경향 국제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침을 열며]테러의 유비쿼터스 시대 (0) | 2016.07.18 |
---|---|
[정동칼럼]브렉시트라는 유령 (0) | 2016.07.18 |
[국제칼럼]끝나지 않은 이라크 전쟁 (0) | 2016.07.11 |
[글로벌 시시각각]경제적 ‘이성’보다 반EU·반이민 ‘감정’ 택한 영국 (0) | 2016.07.05 |
[시론]브렉시트가 몰고 온 신고립주의 (0) | 2016.06.2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