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영국에서 이라크전 참전 진상조사위원회가 ‘이라크 전쟁’에 대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위원회를 이끈 원로 행정가 존 칠콧 경의 이름을 따 ‘칠콧 보고서’로 명명됐다. 12권 분량의 이 보고서는 이라크전 참전 결정이 당시 토니 블레어 정부의 오판에 따른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전쟁의 명분이었던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의 대량살상무기(WMD) 위협에 대한 정보와 평가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7월 3일(현지시간) 이라크 바그다드 도심에서 2차례 폭탄테러가 일어나 200여명이 숨지거나 다쳤다. 먼저 번화가인 카라다에서 차량 폭탄테러가 일어나 78명이 목숨을 잃었다. 소방관과 시민들이 카라다에서 시신들을 담요에 실어 나르고 있다. 이슬람국가(IS)는 자신들이 공격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이어 바그다드 동부에서 급조폭발물(IED)이 터져 5명이 숨졌다. 이날 테러는 이라크에서 올해 들어 일어난 최악의 참사였다. AP연합뉴스
실제로 이라크 전쟁의 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는 아직도 이라크 땅에서 발견되지 않고 있다. 후세인 정권의 테러지원 의혹도 밝혀진 것이 없다. 다만 무차별적 독재정권을 제거했다는 데 국제사회가 나름 의미를 두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정당치 않은 전쟁으로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라크는 황폐화했고 아직도 사실상 내전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달 초 바그다드 쇼핑센터에서 발생한 한 자폭테러에서는 최소 292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더욱이 이라크 전쟁의 판도라 상자는 열린 이후 닫힐 줄을 모른다. 사실 뚜껑이 사라져버렸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중동 및 국제정세에 심각한 악영향을 현재까지도 미치고 있다. 우선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의 등장도 이라크 전쟁이 없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현상이다. 후세인이 축출되고 선거를 통해 집권한 시아파 중앙정부는 수니파에 대한 보복과 억압을 행해왔다. 군에서 정부기관에서 대부분 수니파는 쫓겨났다. 권력과 기득권에서 소외된 수니파 과격세력이 이라크에서 조직을 설립했다. 그리고 시아파의 일파인 알라위파 시리아 중앙정부에 의해 수십 년간 소외된 시리아의 수니파와 결합해 칼리파 국가를 선포했다.
IS의 칼리파 국가가 없었다면 현재 유럽을 들쑤셔놓고 있는 난민 사태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수의 병력으로 방대한 영토를 통치해야 했던 IS는 시리아 주민에 대한 무차별 학살과 테러를 감행했다. 500만 이상의 시리아 난민이 발생했다. 이들이 터키와 지중해를 통해 유럽으로 향하고 있다. 고무보트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던 3살 아일란 쿠르디의 시신은 국제사회를 경악시켰다. 지중해에서는 매년 수천 명이 작은 보트를 타고 오다 익사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반이슬람 정서는 물론 이슬람 공포증까지 고조됐다. 여러 나라에서 우파가 영향력을 확대하며 난민에 대한 공격도 발생했다. 급기야 세계에서 가장 인도적인 정책을 펴오던 EU는 터키에 난민수용 자금지원을 약속하면서 난민의 유럽행을 막아버렸다. 최근 영국의 EU 탈퇴, 즉 브렉시트도 결과적으로 이라크 전쟁의 결과물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라크 전쟁 이후 중동 지역에서는 또 수니파와 시아파 간 갈등도 고조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란과 외교관계도 단절했다. 전쟁 이후 이라크에 시아파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란에서 시작되는 시아파벨트가 시리아 그리고 레바논까지 연결됐다. 이에 위협을 느낀 사우디 등 수니파 국가들이 이란을 견제하고 있다. 예멘에서는 사우디가 지원하는 정부군과 이란이 후원하는 시아파 반군 간 내전도 진행되고 있다.
이라크에서의 전쟁은 끝났지만, 그 후폭풍은 중동의 끊임없이 지속되는 내전과 분열, 대규모 난민 사태, 가공할 국제테러, 브렉시트 등 전례 없는 국제 정치경제의 난맥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국제사회는 이라크 전쟁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과 냉철한 평가를 거부하고 있다.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언급하면서 전쟁의 정당성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역사에 대한 엄정한 평가와 반성이 현재와 미래의 평화 그리고 화해를 가져올 수 있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노력도 있어야 한다. 전쟁으로 분열되고 황폐화한 이라크 상황의 치유를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도 있어야 한다. IS 격퇴작전이라는 군사적 조치 외에도 이라크 내 종파 및 민족 간 화합을 위한 국제사회의 중재노력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서정민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경향 국제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동칼럼]브렉시트라는 유령 (0) | 2016.07.18 |
---|---|
[국제칼럼]니스 사태, 미친 폭력의 민낯 (0) | 2016.07.18 |
[글로벌 시시각각]경제적 ‘이성’보다 반EU·반이민 ‘감정’ 택한 영국 (0) | 2016.07.05 |
[시론]브렉시트가 몰고 온 신고립주의 (0) | 2016.06.27 |
[정동식의 유럽 리포트]“EU는 운 다했어도 유럽 통합은 ‘끝’ 아니다…민족국가 체제로 회귀 없을 것” (0) | 2016.06.2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