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지난 5년 반의 집권을 이끌어온 외교독트린에 대해 스스로 정의를 내렸다. 그는 지난 4월 아시아 순방으로 향하는 에어포스원 기내에서 기자들과 대외정책에 관한 의견을 나눴다. 세간에 일고 있는 대외정책 비판에 대해 흥분된 어조로 반응하면서 자신의 외교철학과 원칙은 “Don’t do stupid shit!”이라고 말한 것이다. 비속어가 섞여 있어 순화해서 해석하자면 ‘멍청한 짓거리 하지 마!’ 정도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표현이 단순히 홧김에 터진 말이 아니라는 의견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최근 대외정책 칼럼니스트들과의 비공식 미팅을 포함해서 여러 차례 이런 표현을 했다고 전해진다.
의도된 것이든, 홧김에 던진 말이든 이 말은 어쩌면 오바마독트린의 가장 정확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미 문장을 구성하는 단어들의 앞글자만을 따서 ‘DDSS 독트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토머스 프리드먼은 오바마가 퇴임 후에 자서전을 집필한다면 책 제목의 가장 강력한 후보라고 비꼬듯 말했다. 그런데 이 표현에 대한 해석은 오바마 자신 및 지지자들과 비판자가 다르다. 전자는 외교에 있어 무모한 군사개입 같은 멍청한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지만, 후자는 어떤 변화나 주도권 행사도 없는 그의 소극적 자세를 가리키는 말로 읽힐 것이 분명하다.
오바마 미 대통령 안내하는 박근혜 대통령 (출처 :경향DB)
외교라는 것이 여러 변수가 복잡하게 얽히는 법이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를 타개하기 위한 선택을 하고, 과감히 실행에 옮기는 일임에도 오바마는 ‘빌라도의 손 씻기’처럼 뒤로 물러서 복지부동의 자세를 고수하고 있다. 유화외교를 넘어 외교부재로 이어진다는 비판이 점점 더 거세지고 있으며 미국 국민들의 지지도가 바닥을 치고 있다. 2주 전 월스트리트저널과 NBC방송에서 공동으로 행한 여론조사에서 오바마 외교에 대한 지지율이 취임 이후 최저인 37%를 기록했다. 첫 번째 임기 동안 외교 분야에 기대 이상의 수행성과를 보였던 것이 재선 성공의 주요인이었던 것을 기억하면 추락의 속도가 매우 빠르다고 할 수 있다.
재임도 반환점이 멀지 않아 레임덕이 코앞에 닥친 터라 획기적인 노선변화의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전임 부시 정부의 재난에 가까운 외교 실패를 딛고 화려한 부활을 꿈꾸게 했던 오바마의 집권은 미래로 나가기보다는 과거의 실패를 재현하지 않으려는 것에만 온통 집중하고 있다. 카이로 연설에서 아랍 세계를 향한 손길을 내밀고, 프라하 연설에서 핵무기 없는 미래를 격정적으로 선언하던 오바마의 ‘담대한 희망(audacity of hope)’은 자신이 먼저 포기해버린 모양이다. 오바마 외교의 이러한 특징은 대북정책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북한을 포함해 어떤 적과도 기꺼이 만나 대화로 문제를 풀겠다는 당초의 약속은 사라지고 사실상의 무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전략적 인내에서 한 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한다. 그러는 동안 북한의 핵능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유사한 길을 가고 있다. 요즘 유행처럼 사용되는 표현인 ‘도플갱어’ 수준이다.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한 노력은커녕 공을 북한에 몽땅 다 넘겨버렸다. 감나무 아래에서 입을 벌리고 감이 떨어지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과 같은 근거 없는 북한붕괴론은 거의 집착 수준이다. 그래도 미국 국민들은 사정이 우리보다는 훨씬 낫다. 침체하고 있다지만 여전히 세계 최강의 풍부한 외교자산을 가졌고, 완충과 교정의 여유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시시각각 벌어지는 강대국의 세력재편 소용돌이 속에서 외교의 실패는 곧바로 천길 낭떠러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박 대통령은 국내 정치에서의 리더십 실종과 마찬가지로 이미지로만 지탱해온 외교에서도 점점 무능력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김준형 | 한동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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