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우승보다 큰 월드컵 개최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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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국제칼럼]우승보다 큰 월드컵 개최 경험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7. 20.

얼마 전에 끝난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개최국 브라질의 팬들은 자국팀이 독일팀에 참패당하는 광경을 넋 놓고 지켜보며 큰 충격에 휩싸였다. 패배 자체보다는 그 정도와 방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난 12년 동안 자국에서 열린 경기에서 패배한 적이 없고 여섯 번째 월드컵 우승을 꿈꾸던 축구의 나라 브라질의 대표팀이 1-7로 무너졌으니 브라질 신문들에 “치욕 중의 치욕” “사상 최대의 수치”라는 제목의 머리기사가 등장한 것은 전혀 놀랍지 않다. 준결승전 후반 6분에야 첫 유효슈팅을 기록한 브라질팀은 굴욕적 기록을 쏟아냈다.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7골을 내주고 6점 차로 패배한 첫 팀이 되었다. 전반에만 5골을 실점해 1974년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 1982년 아이티 대표팀의 달갑지 않은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믿기 힘든 참패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한마디로 이는 실력이 부족한 선수들로 구성되고 기만에 가까울 정도로 과대평가된 팀의 추락이었다. 월드컵을 앞두고 언론매체의 과장된 보도, 외교적 찬사, 인기를 끄는 언급이 득세하는 가운데 전통적 축구 강국의 경기력에 대한 더 현실적이고 냉정한 판단이 주목받기란 어려웠을지 모른다. 하지만 2014년 브라질팀은 왕년의 명성에 걸맞지 않은 평범하고 독창성 없는 팀으로 월드컵 4강에도 그리 어울리지 않았다. 브라질 선수들은 준결승전 시작 전부터 잔뜩 긴장하거나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핵심 선수 없이 강한 상대편에 맞서 이겨야 한다는 압박감이 그들을 혹독하게 짓눌렀을 테지만, 그들이 계속 포옹하거나 머리를 맞대고 감정의 과잉 속에서 서로 격려할 때 독일 선수들은 극히 대조적으로 냉정하고 차분한 태도를 유지하는 듯했다.

경기가 끝난 뒤 전 세계 축구팬들은 축구에 충실한 팀이 상대편을 팔꿈치로 가격하거나 속임수 동작을 남발하며 브라질 편을 드는 불공정한 심판 이른바 ‘헤페리뉴(Refereenho)’의 도움을 받아온 부정행위의 팀을 압도했다고 통쾌해하는 모양새다. 독일팀에는 대중매체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 모은 슈퍼스타, ‘날 좀 보소’ 식으로 꾸미고 뽐내는 선수, 심판들을 기만하려는 과장된 몸짓이 거의 없었다. 성실하게 경기에 임하는 견고한 팀, 홍명보 감독이 역설한 ‘원 팀’이 있었을 뿐이다.

독일 선수들이 브라질전서 대승을 거둔 뒤 승리를 기념하는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_ AP연합


2014년 월드컵은 새로운 전술의 실험, 득점이 많이 나오는 열정적인 경기, 골키퍼들의 눈부신 활약 등으로 ‘역대 최고의 축구대회’라는 찬사를 받았다. 일부 경기장의 공사가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아 사전 점검의 기회가 충분하지 않기도 했지만 대회는 큰 어려움 없이 끝났다. 게다가 당초 우려했던 심각한 폭력 사태는 브라질이 아니라 결승전이 끝난 뒤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벌어졌다. 경찰의 진압 때문인지, 월드컵의 원활한 진행에 협조하려는 전반적 정서 때문인지 개막일에 브라질의 최대 도시 상파울루에서 발생한 폭력 사태와 반정부 시위는 크게 확산되지 않았다. 참패에 충격을 받아 브라질인들이 저항에 필요한 기력을 도저히 회복할 수 없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동안 브라질의 월드컵 개최 역량을 과소평가해온 비판자들은 결국 머쓱하지 않았을까. BBC 뉴스가 소개한 일부 학자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주요 스포츠 대회의 우승보다는 대회의 개최와 행복의 정도 사이에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개최국이 더 큰 만족과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다. 브라질의 일부 월드컵 경기장은 이제 재정적 어려움을 초래할 공산이 크고, 생필품이 부족하며 빈곤이 만연한 브라질 동북부 주민들의 삶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을 수 있다. 대표팀의 실망스러운 패배와 향후 예상되는 곤경에도 불구하고 월드컵 개최의 경험이 브라질인들에게 얼마만큼의 성취감을 선사하며 더 나은 삶을 준비하는 자신감과 활력을 부여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구병 | 아주대 교수·서양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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