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푸틴, 기회를 놓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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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사설]푸틴, 기회를 놓치지 마라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7. 20.

지난주 우크라이나 동부 상공을 날던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가 미사일에 격추돼 승객 전원이 사망하는 참사가 있었지만 누가 미사일을 쏘았는지 아직 객관적으로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서방세계는 러시아의 군사 지원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 반군이 저질렀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친러시아 반군 측은 우크라이나 정부의 책임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정보는 반군 소행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반군의 통신내용이라고 공개한 대화에는 반군 소행임을 짐작하게 하는 발언이 포함되어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반군 지역에서 미사일이 발사됐다”고 말했다.

사고 직후 러시아는 외형상 올바른 대응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미·러 외무장관간 전화 회담을 한 뒤 성명을 통해 “여객기 추락에 대해 편견없고 독립적이며 공개적인 국제조사가 필요하다는 점에 의견을 같이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사고 원인 조사를 국제민간항공기구가 주도하도록 하자는 데도 합의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등 국제조사단의 현장 접근이 반군 측에 의해 일부만 허용되고 있는 것이다. 반군 측이 현장 증거를 훼손하고 있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반군 측은 블랙박스를 회수했다고 발표했다가 취소하는 의심스러운 행동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대공 미사일을 우크라이나 동부로 밀반입했다가 사고 이후 다시 러시아로 옮겨 증거를 인멸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러시아가 나서야 한다. 191명의 희생자를 낸 네덜란드의 마르크 뤼테 총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당신이 정말 도울 생각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크림 자치공화국 강제 합병, 반군 지원 문제로 경제 제재를 받고 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여객기 격추 책임론까지 불거지고 있다.

연설중인 푸틴 러시아 대통령 _ AFP연합


만일 푸틴 대통령이 이런 위기 국면을 벗어나겠다고 진상 조사를 방해하거나 회피한다면 최악의 자충수가 될 것이다. 러시아 에너지 의존 때문에 러시아 제재에 다소 느슨했던 유럽국가들이 이 사건을 계기로 결집, 강력한 보복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러시아는 국제적 고립 상태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고 조사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그것이 궁지에서 탈출하는 가장 효과적인 길이자 러시아가 문명국가의 일원임을 증명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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