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수 | 한양대 교수·중동학
<죄없는 무슬림>이란 저급한 영화 한편 때문에 이슬람세계가 다시 분노와 폭력에 휩싸이고 있다. 이 영화가 미국에서 제작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리비아의 미국 영사관이 습격당해 대사를 포함한 4명의 외교관이 죽고, 중동 전역의 서방 시설이 공격받고 있다. 서방의 가치기준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물론 폭력적으로 외국대사관을 공격하는 방식은 절대다수 무슬림들에게도 외면당하고 있다.
그럼에도 무슬림 대중 사이에서는 서방에 대한 총체적 불신이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다. 이번 사태를 “미국에 의해 이슬람세계가 공격당했다”고 선동하는 급진적 무슬림들은 대중적 분노를 십분 활용해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는 호기로 삼고 있다. 11년 전 9·11테러가 일어났을 때 미국의 극우파들이 “이슬람에 의해 미국이 공격당했다며”며 이슬람 세계에 대한 강도 높은 대테러전쟁을 독려하던 상황과 너무나 유사하다.
이슬람 모독한 영화를 제작한 데 분노한 이집트인들이 성조기를 찢고 있다. (출처: 경향DB)
이슬람을 완성한 무함마드는 15억 무슬림들에게 영적인 지도자이자 일상적 삶에서 가장 닮고 싶은 롤 모델이다. 모든 것을 나눠주고, 후계자도 남기지 않고, 낮춤과 배려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한 인간으로 살다 간 그의 평범한 리더십에 무슬림들은 절절히 감동하고 흠모한다. 너무나 존경해 초상화나 동상조차 만들지 못하고 마음으로만 깊이 사랑하고 경외한다. 그런 무함마드가 동성애자나 탐욕스러운 사기꾼으로 묘사되었을 때, 많은 무슬림들은 모욕감에 극단적 분노를 느낀다. 예술적 표현의 자유라는 범주를 뛰어넘는 문화적 테러나 인격적 살인으로 간주한다. 이슬람교를 악마로 표현한 영국 작가 살만 루시디의 ‘악마의 시’, 무함마드를 자살 폭탄 테러리스트로 묘사한 덴마크 일간지 윌란스 포스텐의 만평사건, 작년 11월 프랑스 풍자 전문 주간지 샤를리 엡도의 무함마드 풍자만화 사건 등에서도 무슬림들의 격렬한 항의가 이어졌지만, 누구도 책임지거나 법적인 제재를 받지 않았다. 이러한 의도적인 이슬람포비아(이슬람혐오증)가 되풀이되는 배경이다.
한편 노벨 문학상을 받은 독일 석학 군테르가 2010년 이스라엘의 평화위협과 핵무기 은닉을 고발하는 시를 발표했던 적이 있었다. “나는 왜 오랜 시간 침묵하고 있나/ 무엇이 명백한지/ 핵무장 이스라엘이 가뜩이나 불안한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네/ 이제는 말해야 하네. 내일이면 너무 늦을 것들을/ 그건 바로 우리가 끔찍한 범죄행위의 제공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네.” 양심과 지성에 바탕을 둔 시적 표현의 자유가 반유대주의를 표방했다고 해서 그는 무참하게 공격당하고 거의 문단에서 매장당하는 수모를 겼었다. 지난해 미국의 어바인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열린 마이클 오렌 주미 이스라엘 대사의 강연 때 학생들이 연설 도중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민간인 살상을 외쳤다는 이유로 유죄평결을 받았다. 누구든 예외없이 반유대주의적 표현을 하면 법적인 제재를 받는다.
이슬람권의 폭력사태가 사건의 직접적 이해당사자가 아닌 미국이나 독일의 시설까지 공격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서구가 그동안 보여온 이중잣대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폭발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서구사회가 반유대주의와 똑같은 잣대로 의도적인 이슬람포비아를 유포하는 행위를 제재하지 않는 한 이로 인한 폭력사태는 악순환을 거듭할 것이고, 반미감정을 증폭시켜 아랍 민주화 시위 이후 모처럼 마련된 이슬람과 서구의 협력 분위기를 다시 냉각시킬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을 두고 일찍이 영국의 저술가 타리크 알리는 ‘문명 간의 충돌’이 아닌 이슬람과 서구세계의 급진주의자들에 의한 ‘무지의 충돌’로 규정하면서 양쪽 세계의 지식인들과 건전한 주류층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낼 것을 주문한 적이 있다. 다른 종교를 의도적으로 모독하고 적의를 촉발하는 행위를 예술의 이름으로 포장하는 비열한 행위에 제재를 가할 때, 이를 빌미로 폭력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야욕을 충족시키려는 극단주의자들의 행패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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