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주권국가의 해석학적 판단
본문 바로가기
경향 국제칼럼

[국제칼럼]주권국가의 해석학적 판단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4. 5.

이젠 고인이 된 한 선생님이 오래전 학부 수업 때 언급하신 두 부류의 지식인 이야기가 떠오른다. 독일 철학자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의 해석학을 거론하면서 기능적 지식인과 해석학적 지식인을 대비하신 선생님의 설명에는 격동의 1980년대를 겪어야 했던 한 지식인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최근 두 건의 법원 판결을 접하면서 ‘기능적’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하나는 지난 3월 말 아르헨티나의 고등법원이 증거 불충분으로 페르난데스 대통령에 대한 니스만 검사의 고발 사건을 기각한 결정이었다. 수사를 지휘하던 니스만 검사가 두 달여 전 의회 증언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사망한 뒤 아르헨티나의 여론은 뜨겁게 달아올랐지만 그의 사망을 둘러싼 정황은 불분명하다. 정부 개입의 의혹이 해소되지 않았고 진상 규명도 지지부진하다. 관련 의혹을 다각적으로 검토하느라 시간이 걸린다기보다 그럴 의지와 역량이 있는지 의심스러운 지경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 법원의 범죄인 인도 결정이었다. 지난 몇 주 동안 집중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사업 관련 문제를 해결하고자 경찰서를 찾은 한국터보기계(K-Turbo) 이헌석 대표는 자신이 모르는 새 미국 검찰의 지명수배 명단에 오른 탓에 사기미수 혐의로 구속당했고 법원은 지난 2월 단심재판을 통해 그의 미국 인도를 허가했다. 변호인은 이 대표의 구속과 인도 결정이 “사법주권의 포기”이자 “자국민 보호 원칙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법무부 관계자는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법과 경제 문제를 접할 때, 어떤 결정이 합리적이고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지 상식적 판단을 멈추고 전문가들에게 전적으로 의탁한다. 그만큼 전문성의 문턱이 높은 탓이리라. 법원 판결에 대한 의심과 반박은 가당찮은 도전으로 치부되고 자칫 탄압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무감각하고 기능적인 판결과 사무 처리는 문제를 더 꼬이게 만들 수 있다. 이헌석 대표 사건 외에 2004년 한국이 미국에 이라크 추가 파병을 요청받은 뒤 이라크에서 일하던 김선일씨가 무장단체에 의해 살해당한 사건과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을 통해 잘 알려진 대로 한 주부가 마약사범으로 낙인찍혀 카리브해의 프랑스령 마르티니크에서 2년 가까이 수감된 사건에서도 유사한 문제점을 찾아볼 수 있다.

고 김선일씨의 아버지, 어머니가 아들을 살해한 알 자르카위의 사망소식을 듣고 용서의 뜻을 밝힌 바가 있다. (출처 : 경향DB)


더욱이 이 사건들은 개인과 국가의 존망에 필수적인 주권이 엄혹한 국제 질서에 의해 어떻게 약화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타국의 주권을 상호 인정해야 하는 규범과 타국을 사실상 식민화하는 제국 질서가 병존하고 있는 것이 우리가 직면한 국제 질서의 현실이다. 근대 국제법에 규정된 국가 간의 형식적 평등과 달리 국제 정치의 현실 속에 내재된 실질적 불평등과 위계의 문제는 다양한 양태로 드러난다. 그렇기에 규범과 현실의 모순 사이에 갇혀 힘겨워하는 이들이 집으로 가는 길은 여전히 멀고 험하다.

법원 판결이나 정부 부처의 사무 처리에 대해 ‘기능적’이라 비판하고 해석학적 지식인 운운한다면 외교부나 법무부의 성실한 담당자들이 미흡한 지원 체계나 인력 부족을 호소하며 가혹하다고 항변할 수 있겠다. 하지만 주권국가를 대표하는 공무 담당자에게 궂은일에 나서는 책임감과 아울러 해석학적 판단을 요구하는 주문은 꼭 필요하다. 2년 반 전 미국 검찰의 범죄인 인도 요청을 받았을 때, 담당자가 그 사실을 당사자에게 통보하고 전후 사정을 확인했더라면, 그리하여 자신이 모르는 새 범죄 혐의자로 몰린 중소기업 대표가 대책을 강구할 기회를 갖게 됐더라면, 그가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 할 정도로 억울한 심정을 드러냈을까? 누군가는 이 사건들을 ‘자업자득’으로 간주하는 기능적 심판자의 시각을 지닐 수 있겠지만, 잘못을 범한 이에게도 여전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박구병 | 아주대 교수·서양현대사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