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는 2008년 학습지도요령을 개정한 이후 두 번째로 실시한 중학교 사회과 교과서의 검정에서 역사 8종, 공민 6종, 지리 4종을 합격시켰다. 아베 정권은 이번 검정을 통해 자신이 지향하는 역사인식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다.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는 서술을 지리, 공민 분야만이 아니라 8종의 역사교과서에 모두 수록하도록 검정을 지도하였다. 2014년 1월에 학습지도요령의 해설서를 개정해 ‘국제법상 정당한 근거’를 갖고 독도를 영토로 편입한 경위를 언급하도록 명시했을 때 이미 예상했지만, 특별한 코너를 설치하고 많은 내용을 할애하는 등 매우 적극적인 교과서들도 있었다. 가장 높은 채택률을 기록하고 있는 도쿄서적과 제국서원에서 발행한 교과서가 그랬다. 한국에서 우익 성향의 교과서로 분류하는 출판사의 것이 아니었다.
독도가 일본의 영토란 교과서들의 논리는 기본적으로 똑같다. 17세기에 일본이 독도를 영유했고, 1905년 시마네현에서 고시하여 영토로 편입했는데, 1952년 한국이 이승만 라인을 선포하여 점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논리에는 자신이 일으킨 러일전쟁과 아시아·태평양전쟁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
일본 근대사에서 침략성을 지우거나 희석화하려는 태도는 독도에 대한 기술에서만 확인되는 것이 아니다. 우익 세력이 제작한 두 종의 교과서는 이전에도 동남아에 대한 침략을 해방 전쟁으로 묘사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1945년을 전후로 인도와 동남아 지역의 국가들이 독립할 수 있도록 일본이 도와주었다는 내용까지 새로 추가하고 있다. 이쿠호샤는 ‘대동아전쟁과 아시아의 독립’, 지유샤는 ‘열강의 식민지와 아시아의 민족운동’이란 제목의 칼럼을 두 쪽씩이나 할애하고 있다.
그런데 우익 세력의 교과서는 1941년 미국을 공격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마치 조선을 침략하고 황국신민화 정책과 강제동원 정책을 실시한 사실을 언급하고 있는 것과 같다. 그러면서도 ‘근대화’를 목적으로 조선을 지배했다고 직접 언급한다. 마찬가지 접근법으로 미국을 침략했지만 동남아를 해방시켰고 독립을 도와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침략의 정의는 다양하다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발언과 이러한 접근법을 연계시켜 보면, 일본의 행위를 침략으로만 단정할 수 없다는 역사인식을 중학생에게 전달하려는 시도가 앞으로 더욱 세련되게 추진되어 갈 것임을 시사한다. 이쿠호샤의 집필진은 일본의 최대 우익 세력인 일본회의 계열의 단체와 관계된 시람들이기 때문이다.
일본회의는 중앙과 지방을 불문하고 일본 정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국회의원 조직에는 아베 신조 총리와 5명의 장관도 회원이다. 특히 이번 교과서 검정을 책임진 시모무라 하쿠분 문부과학상은 국회의원 조직의 사무국장을 지냈다. 총리의 보좌관 가운데 일본회의 회원으로 확인된 사람만 둘이다.
일본회의는 천황주의로 되돌아간 국가를 세우려 한다. 영토에 대한 확장의식을 갖고 있는 단체이기도 하다. 그들은 대중의 여론을 조성하는 방식보다 조직력을 바탕으로 집회를 열고, 의회에 진정하는 선전 활동을 통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다. 현대 민주주의의 장단점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 유기홍 의원이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가져온 3종류의 교학사 역사교과서 (출처 : 경향DB)
이제 일본의 역사교과서에서 한국에 관한 사실적 측면의 왜곡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반면에 역사인식상의 논쟁은 당분간 갈수록 확대될 것이다. 일본회의와 아베 정권은 보통의 일본인이 생각하고 있거나 품을 수 있는 역사인식을 주변국에 가감 없이 드러내게 하면서 자신들의 역사관을 확장시키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앞으로 우리가 만나야 할 일본인의 역사인식이다.
신주백 | 연세대 HK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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