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새해를 맞이하는 새벽, 독일 쾰른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진 집단 폭행 사건이 독일뿐 아니라 유럽 전역을 충격과 분노로 몰아가고 있다. 작년 해변에서 익사한 소년 아일란의 사진 한 장이 세계적으로 시리아 난민에 대한 인도주의적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면 이번 쾰른 사건은 반대로 이슬람계 이민자와 난민에 대한 비난과 증오의 폭풍을 초래했다. 어려운 조건에도 불구하고 난민에 대해 용감하고 관대한 정책을 펴는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궁지에 몰렸다. 아직 사건의 전말이 모두 밝혀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미 알려진 요소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이다. 새해맞이 축제의 밤 쾰른 역전에는 1000명 이상의 북아프리카 및 중동 출신 청년들이 군집해 있었다. 이들은 역 앞을 오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협박하고 강도질하고 심지어 여성들을 추행 또는 폭행했다. 파티를 즐기러 나온 젊은 여성들을 수십명이 포위한 채 몸을 더듬었고 옷 속에 손을 집어넣으며 추행했다. 심지어 남자 친구와 같이 외출한 여성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한다.
유럽의 여론을 분노하게 만든 것은 경찰과 당국의 태도였다. 쾰른 경찰은 이날 밤 시내의 상황이 ‘대체적으로 안정적’이었다고 발표했다. 시 당국이나 정부에서도 별문제가 없었다고 애써 태연한 척했다. 상황을 통제하지 못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찰과 민감한 난민 문제에 불을 지필 수 있는 뉴스를 감추려는 정치권의 안이하고 부조리한 태도였던 것이다. 하지만 은폐하기에는 범죄의 규모가 너무 컸다. 언론에서 상황을 보도하자 피해자 수는 현재까지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최근 집계에 의하면 800명이 넘는 피해자가 고발했고, 그 가운데 절반 이상이 성폭력 피해자다. 또 쾰른뿐 아니라 함부르크 등 다른 도시에서도 비슷한 사건들이 발생했다.
유럽연합(EU)의 난민 대응_경향DB
쾰른은 전통적으로 독일에서 가장 자유롭고 개방적인 도시다. 폐쇄성이 강한 동독지역과 달리 이민자나 난민에 대해 포용적인 태도를 보이는 다문화적 지역이다. 쾰른의 카니발은 모든 참여자가 흥겹게 놀고 즐길 수 있는 축제로 유명하다. 이런 자유의 공간을 젊은 외국인 청년들이 점령해 시민을 상대로 집단 폭력을 휘둘렀으니 문화적 충격을 상상할 만하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유럽에서는 봇물이 터진 듯 다양한 불만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극우 정치세력은 평소대로 이슬람의 ‘야만적’ 본능이 집단적으로 표출되었을 뿐이라고 비난하며 반대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중도 또는 진보 정치세력에서도 반성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그동안 이민자나 난민에 대해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로 그 폭력성을 외면하고 비판을 피해왔다는 성찰이다. 일례로 이슬람계 이민자들이 많은 학교에서 베일을 쓰지 않는 여학생들은 ‘창녀’라고 놀림을 당한다. 2012년에는 벨기에 브뤼셀의 이민자 동네를 배경으로 서양 여성이 길을 갈 때 당하는 언어적, 물리적 폭력을 <거리의 여인>이라는 다큐멘터리로 제작했는데, 당시 일부에서는 이를 인종주의적 작품이라고 폄훼했다. 여성주의 내부에서도 의견은 갈렸다. 일부 페미니스트는 쾰른 사건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동시에 뮌헨 맥주축제 등에서 드러나는 반(反)여성적 행태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다른 일부는 이슬람 종교와 문화가 특별히 여성 억압적 성격을 갖는다고 비판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이슬람국가(IS)에 의한 파리 테러가 발생했을 때도 유럽의 여론은 어느 정도 차분하고 냉정하게 반응했다. 이민자나 난민의 문제와 테러리즘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쾰른 사건은 수백, 수천의 외국인이 잠재적으로 연결된 군중의 폭력이었다. 사건이 벌어진 후 일부 난민 단체는 역전에서 화해의 제스처로 하얀 꽃을 선사하는 행사를 벌였지만 독일 시민의 싸늘한 거절을 경험해야 했다. 결정적으로 돌아선 유럽인의 마음을 되돌리기는 불행히도 쉽지 않을 듯하다.
조홍식 | 숭실대 교수·사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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