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라틴아메리카 일부 국가에서 또다시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의회가 대통령 탄핵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브라질과 의회 다수파를 차지한 야권이 대통령 소환 투표를 계획하고 있는 베네수엘라가 대표적인 사례다. 월드컵 개최 이전인 2013년에 대중교통요금 인상을 계기로 시작된 시위가 부정부패에 대한 비판으로 확대될 때만 해도 브라질 노동자당 출신의 여성 대통령 지우마 호세프는 그것을 민주주의 체제에서 용인해야 하는 정당한 요구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1년여 전 연립 정부를 구성한 정당들의 유력 정치인들이 국영석유회사 페트로브라스로부터 불법 정치자금과 뇌물을 받았다는 부패 추문이 사실로 드러난 뒤 지속적인 경기침체와 지카 바이러스의 확산 등 잇따른 악재로 호세프의 인기는 추락을 거듭했다. 게다가 여성 대통령의 완고하고 비타협적인 이미지와 여러 부처에 자율권을 부여하지 않고 개입하려는 통치 방식도 지지율 하락을 재촉하는 요인으로 지적돼왔다.
베네수엘라에서도 유가 하락에 따른 경기침체가 생필품 부족 현상을 악화시키고 광범위한 대중의 불만을 초래하면서 2013년 우고 차베스의 사망 이후 권좌를 계승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인기는 급락했다. 또 마두로 정부는 유혈 폭력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야당 지도자들을 투옥시키면서 야당 지지자들의 반발을 샀다. 이런 상황이 반영된 결과 2015년 12월 총선을 통해 17년 만에 여소야대 의회가 구성됐고, 대통령과 정부의 권한을 축소하기 위해 다양한 법적 수단이 모색되고 있다.
이런 상황의 전개는 새로운 정치를 요구하는 오래된 방식이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주기적으로 가능한 권력 교체의 단면일 뿐이다. 아울러 룰라와 차베스라는 정치적 거인의 공백을 메우고 성과를 유지하는 작업이 결코 쉽지 않으며 양국에서 그만큼 제도의 정착이나 체계의 정비가 충실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방증일 것이다. 재정적자를 줄인 것처럼 정부 회계를 조작했다는 주장은 반대자들이 호세프 탄핵에 나선 명분이지만, 사실 탄핵을 추진하는 정치인 가운데 다수가 횡령, 자금 세탁 등 부패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의원 신분을 유지하는 이들이 정상적인 법적 절차로부터 면제받고 있는 등 여전히 갈 길이 멀다.
호세프와 마두로는 경기침체와 정치 불신뿐 아니라 개혁의 족적을 뚜렷이 남긴 전임자의 그늘 속에서 대중의 거센 분노를 한몸에 받게 된 불운에 아쉬움을 토로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잘 정비된 민주적 견제와 권력 교체의 메커니즘에 실린 대중의 역동적 선택이 무책임하고 평판이 좋지 않은 권력자에게 그런 운명을 선사할 수 있으며 권좌를 노리는 이들을 주기적으로 경계하게 만들고 누적된 폐단을 해소할 수 있는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을 부인할 순 없을 것이다.
박구병 | 아주대 교수·서양현대사
베네수엘라에서도 유가 하락에 따른 경기침체가 생필품 부족 현상을 악화시키고 광범위한 대중의 불만을 초래하면서 2013년 우고 차베스의 사망 이후 권좌를 계승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인기는 급락했다. 또 마두로 정부는 유혈 폭력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야당 지도자들을 투옥시키면서 야당 지지자들의 반발을 샀다. 이런 상황이 반영된 결과 2015년 12월 총선을 통해 17년 만에 여소야대 의회가 구성됐고, 대통령과 정부의 권한을 축소하기 위해 다양한 법적 수단이 모색되고 있다.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_연합뉴스
21세기 초 라틴아메리카의 좌파 선풍을 주도해온 양국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그저 ‘좌파의 몰락’으로 정리한다면, 이는 미흡한 평가라 아니할 수 없다. 실패의 결과는 유사해 보이지만 과정과 원인이 분명히 달랐기 때문이다. 2014년 말 재선에 성공한 호세프는 좌파 정당이지만 부패의 온상이라고 인식된 ‘브라질민주운동당’(PMDB), 탄핵 절차 진행 중 사임한 경력이 있는 전직 대통령 페르난두 콜로르 지 멜루의 세력 등 다양한 성격의 정당들과 연립 정부를 구성했고, 이에 따라 룰라 시대의 개혁적 색채와 시민사회 운동과의 교감, 중하층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약해졌다는 점이 지지율 하락의 주된 이유로 거론되고 있다. 물론 베네수엘라의 경우 마두로가 생필품 부족이 자국에 대한 “제국주의 세력의 경제 전쟁” 탓이라고 강변하거나 지난 1월 초에 곧 임기를 마치게 될 의원들이 특별 회기를 소집해 대법원 판사들을 서둘러 추천하면서 의회의 권한을 제한하고자 정권에 우호적인 대법원을 만들었다고 반발하는 야당과의 갈등을 증폭시키기도 했다.이런 상황의 전개는 새로운 정치를 요구하는 오래된 방식이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주기적으로 가능한 권력 교체의 단면일 뿐이다. 아울러 룰라와 차베스라는 정치적 거인의 공백을 메우고 성과를 유지하는 작업이 결코 쉽지 않으며 양국에서 그만큼 제도의 정착이나 체계의 정비가 충실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방증일 것이다. 재정적자를 줄인 것처럼 정부 회계를 조작했다는 주장은 반대자들이 호세프 탄핵에 나선 명분이지만, 사실 탄핵을 추진하는 정치인 가운데 다수가 횡령, 자금 세탁 등 부패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의원 신분을 유지하는 이들이 정상적인 법적 절차로부터 면제받고 있는 등 여전히 갈 길이 멀다.
호세프와 마두로는 경기침체와 정치 불신뿐 아니라 개혁의 족적을 뚜렷이 남긴 전임자의 그늘 속에서 대중의 거센 분노를 한몸에 받게 된 불운에 아쉬움을 토로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잘 정비된 민주적 견제와 권력 교체의 메커니즘에 실린 대중의 역동적 선택이 무책임하고 평판이 좋지 않은 권력자에게 그런 운명을 선사할 수 있으며 권좌를 노리는 이들을 주기적으로 경계하게 만들고 누적된 폐단을 해소할 수 있는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을 부인할 순 없을 것이다.
박구병 | 아주대 교수·서양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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